수어를 써주시면 안될까요

by 운틴

점심을 먹는데 사람들이 대화를 나눈다. 아무리 집중해 들으려고 해도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가 없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씩 얘기하는 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의 입 모양을 보고 있는데 다음으로 누가 말하고 있는지 알려면 같이 앉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둘러봐야 한다. 밥을 먹는 일에만 집중하려고 해보지만, 밥이 건성으로 넘어간다. 씹지 않았는데도 목구멍으로 넘기려고 애쓴다. 농인 선생님께 들은 게 이런 상황이구나 통감했다. 말하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무리해서 말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옆에 앉아 있는 수어통역사 선생님께 말했다. 둘이서 하는 대화는 수어를 안 써도 입모양을 보면 되지만 여럿이 같이 얘기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우니 수어를 같이 사용해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빼고 모두 다 청인 수어통역사인데 자기들은 들을 수 있으니, 수어를 쓰지 않는다. 목소리가 컸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격앙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희롱당하는 기분이랑 비슷하다고 하면 과장일까.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 있는데 당신들이 하는 말을 나만 못 알아 듣는다고 굳이 입 밖에 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수어를 써달라고 말하고 났는데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고 떨렸다. 한편으론 후련하기도 했다. 꼭 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강하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잔소리처럼 들릴까 봐 그쯤에서 멈췄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수어통역사 선생님이 알았다고 대답했고 바로 사람들이 수어를 같이 사용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대화에 참여했다.


그렇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억지로라도 수어를 써서 말해달라고 끈기를 가지고 부탁해야 한다. 청인에게 구어는 그냥 입에서 바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지만 수어는 특별한 경우(무대 앞에 서서 수어통역을 할 때 등)에 의지를 가지고 해야 하는 말이다. 그래서 대여섯 명이 대화를 나눌 때 농인이 소수이거나 그 농인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을 때 그를 무시하고 구어로 말할 때가 있다. 위에서 밥을 먹을 때의 상황을 적었는데 나는 직원도 아니고 그냥 계약직이어서 무시되었다. 내가 대화에 낄 필요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무시당하는 상황에서 당신들이 수어를 써준다면 나도 대화에 낄 수 있다며 요구하는 건 뭐랄까 과도한 요구이거나 아우성처럼 들렸을 것 같다.


수어를 배울 때 수강생이 대부분 청인이었을 때도 그랬다. 나처럼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는지 청인 선생님은 농인 학생 한두 명을 무시하고 구어로만 강의했다. 나는 손을 들고 선생님이 구어로만 말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우니 손으로 수어를 같이 써가며 강의해달라고 부탁했다. 여태까지 구어로만 강의했는데 나 때문에 수어를 쓰는 게 번거로웠는지 선생님은 못 들은 척하고 계속 구어로 말했다. 결국 수업이 끝나고 다시 선생님께 농인을 배제하고 수업하는 건 옳지 않다고 항의했다. 선생님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으나 그다음 수업에서부터 수어와 구어를 동시에 써가며 수업이 진행되었다. 두 언어를 같이 쓰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농인 선생님이 가르치는 수업에서는 쉬는 시간에도 수어를 써야 한다. 수강생끼리 구어로 말하면 선생님이 소외되기 때문이다.


나는 수어보다 구어를 많이 쓰는데, 구어를 쓰는 청각장애인들과 같이 있을 때는 수어보다는 음성언어로 대화한다. 구화인 중에는 수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한 번은 모임에서 구화인 세 명과 농인 한 명이 수다를 떨다 보니 농인 친구를 소외시켰다. 그중 수어가 조금 나은 내가 구어와 수어를 같이 쓰면서 대화했지만 아무래도 한 가지 언어로만 대화하는 것만 못했다.


사적인 모임에서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청각장애인이 소외되는 경우가 자주 생기지만 공적인 모임이나 행사에서는 편의 지원을 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 있다. 내가 청각장애인이라 문자 통역이나 수어 통역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거의 다 지원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속상한 경험이 있더라도 공식적으로 국가에서 나를 지원하고 지지한다는 믿음으로 버틸 수 있다. 법으로 명시되어 있는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 체험하며 내 위치를 다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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