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말이지만 수어는 언어다. 내 인생은 수어를 아는 시절과 수어를 모르는 시절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수어를 모르던 시절에는 별생각 없이 말하고 듣고 쓰고 읽었다고 하면 수어를 알고 난 후에는 같은 말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전에 장애인 단체에서 내가 하던 일은 영상 전화를 받는 일이었는데 수어를 배운 지 오래되기 전이라 불안했다. 상대방의 수어를 잘 이해하고 그쪽에서 원하는 걸 해줘야 하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봐 매일 걱정이었다. 수어를 쓰는 농인은 긴급하게 청인에게 통화하거나 기관에 전화할 일이 있을 때 ‘107 손말이음센터’로 전화한다. 그러면 담당자가 걸려 온 영상전화를 받아 수어로 하는 통화 내용을 이해한 후에 전화를 건 농인 대신 음성으로 다른 청인이나 기관에 전화를 대신 걸어준다.
내가 직접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손말이음센터의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어려울 때는 가끔 내가 근무하던 곳으로 전화가 왔다. 같은 농인분에게 여러 번 영상전화를 받게 되면 얼굴이 익숙해져 아는 사이가 되는데 그러면 소소한 부탁을 할 때도 있다. 이를테면 비 오는 날 짜장면을 대신 주문해 달라거나 문자로 온 내용을 통역해 달라는 것이다. 어떤 날은 짜장면 주문을 대신해 드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다시 연락이 와서 쿠폰을 못 받았다고 확인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 중국집에 확인해 보니 쿠폰을 드렸다고 해서 중간에 난감해 당황한 기억이 있다.
어떤 날은 신발 가게에서 신발이 준비됐다며 아무 때나 오라는 문자가 왔다며 이 내용을 수어로 번역해 달라는 전화가 왔다. 일상생활에서 문장을 자주 접하지 않는 농인 중에는 가끔 문장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분이 계신다. 그 내용을 수어로 전달해 드리면 고맙다며 전화를 끊으시는데 그럴 때면 내가 조금 아는 수어로 큰 일을 한 것 같아 아주 뿌듯했다. 어떤 때는 법원에 전화를 대신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런 때는 법에 대해 해박하지 못해 수어로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려웠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법률이나 의료와 관계된 특수한 수어 용어를 익히기 위해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가르쳤던 어떤 농인 수어 선생님은 책으로 된 교재를 불편해하시며 문장으로 된 내용을 수어로 바꿔 가르치기보다 책 없이 가르치는 걸 즐기셨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수어는 문자로 된 언어가 아니고 표정과 손을 이용해 의사 전달을 하는 언어라 책을 매개로 가르친다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분의 입장이 잘 이해됐지만 책이 없는 배움이란 걸 상상할 수 없는 청인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교재를 제쳐두고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대화한다는 건 아주 피곤한 일이었지만 그런 만큼 즐겁고 활력이 넘치는 수업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해외여행을 하러 외국으로 나가는 농인도 많고 한국으로 여행을 오는 외국 농인도 많아졌다. 가끔 여행지에서 수어를 하는 외국인을 보면 반가워 아무 말이라도 걸고 싶었지만 내가 아는 국제 수어는 한정되어 있어 그들의 수어를 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수어를 배우던 시절에 만난 마크는 미국인으로 청인이었는데 미국에서 살 때 수어를 배웠다고 했다. 한국에 온 후에 한국 수어를 배우러 내가 다니던 학원에 와서 처음 만났다. 선생님께 수어 단어나 표현을 배우면 그 자리에서 한영사전을 펼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음에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다른 수강생에게 모범이 되었다. 어차피 수어가 처음이면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배우는 데 큰 차이가 없어 보였는데 그의 처지에서 보면 한국어와 한국 수어를 동시에 배우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어 보였다. 마크를 보며 내가 혹시 외국에 가게 된다면 꼭 그 나라의 농인 단체를 찾아가 수어를 배우고 대화를 나눠봐야겠다는 꿈을 품었다. 국적이 달라도 농인이라는 동질감은 국경을 뛰어넘어 한 동포처럼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