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청인과 어울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때때로 만사가 귀찮아지면 청인을 만나지 않는다. 아예 만남을 원천 봉쇄하면 말을 못 알아들을 기회도 없다. 혼자 마음 편하게 지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다. 여러 사람을 만나야 기회도 생기고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 어제는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는데 자리를 준비하는 업무를 맡았다. 모두 자리를 잡고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새로 착용한 보청기에 문제가 생겼다. 배터리가 다 됐는지 그냥 꺼져버렸다. 전에 쓰던 건 곧 꺼질 거라는 알람음이 울렸는데 이건 신호도 없었다. 난감해져서 같이 앉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알리고 부장에게도 말했다. 결제와 관련하여 부장의 지시를 들어야 해서 최대한 가까이 부장의 입에 귀를 갖다 댔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나 배터리를 갈러 사무실로 달려갔다. 배터리를 갈고 차를 마시러 카페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보청기를 다시 끼고 카페에 가니 누군가 식당에서 왜 먼저 나갔냐고 묻는다. 배터리 문제를 이야기하니 보청기가 배터리로 작용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이러고 살고 있다는 걸 만약 감추었다면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혔을 수도 있다. 밥을 먹다가 아무 말도 안 하고 혼자 먼저 가버렸으니 말이다. 부원이 스무 명이나 되니 이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중 단 몇 명이라도 나를 이해하면 다행이다.
내일은 교회의 운영위원회를 교인의 집에서 한다. 허리가 안 좋아 방바닥에 앉는 게 불편해서 가기가 망설여진다. 또 회의에서 오가는 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 두렵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는 되기 싫어 집주인에게 와이파이가 되는지 물었다. 당연히 되니 걱정 말고 오라고 한다. 와이파이가 되면 내가 가진 전자기기를 가져가 번역기와 마이크를 켜놓고 문자로 번역된 대화 내용을 보면서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게 번거롭지만 귀찮다고 사람을 안 만나고 밖에 안 나가는 것보다는 낫다. 사람들 속에서 내 존재 의미를 느끼고 같이 어울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게 나는 즐겁다.
오늘은 아이들이 어릴 때 어린이집을 같이 운영했던 엄마들을 만났다. 헤어진 지 이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나 어울렸다. 귀가 잘 들리던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과 지금도 어울릴 수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귀가 안 들린다는 이유로 그들을 피했던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농인과는 농인대로, 청인과는 청인대로 함께 할 수 있는 게 다르다. 그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고 소중한 인연의 끈을 오래오래 붙잡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