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농인 친구 남주 씨

by 운틴

농인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하고 꿈을 꾸던 때가 있었다. 평소에 농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어서 농인 친구가 생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다. 한데 이사를 하고 새로운 동네의 농아인협회에 나가자마자 농인 친구가 생겼다. 그날은 신년식 날이었던 것 같다. 행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나는 옆에 앉은 사람한테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는 사람이 없다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했다. 지금 앞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 회장인지, 총무인지도 몰랐는데 옆자리 남주 씨가 다 알려줬다. 그녀가 어쩌다 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만날 때마다 내가 모르는 걸 가르쳐줬고 협회에서 나눠주는 기념품을 챙겨줬다. 심지어 구화인을 두 명이나 소개해줘서 내가 갈 때마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생겼다.


멀리 버스를 타고 여행 갈 일이 생기면 자기 옆에 자리를 맡아놓고 나를 앉혔다. 어떤 날은 그녀 옆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내가 여행에 참석한다고 미리 알리지 앉았기 때문이다. 허리가 안 좋아 허리 밴드를 두르고 다니는 그녀는 나와 동갑이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춘향이가 그네를 타는 수어를 해서 남원이라는 걸 알았다.


다른 사람과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것과 달리 나는 그녀와 단둘이 카페에 두 번 갔고 번갈아 커피를 샀다. 카페에서 우리가 나눈 말이 많았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녀는 내 수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녀의 수어를 못 알아들었다. 그녀는 음성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내가 어설픈 수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그녀는 뒷말은 안 해도 안다는 듯이 벌써 수어로 대답하기 시작한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내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그녀가 벌써 대답하기 시작해서 당황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나는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고 그 이유를 쓸데없는 걸 궁금해하는 내 탓으로 돌렸다. 소통의 어긋남도 우리 사이를 방해하지 못해 우리는 늘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남주는 가끔 내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낸다. 그녀가 보낸 사진은 대부분 음식 사진이다. 무슨 행사에서 뭘 먹었는지, 크리스마스이브에 성당에서 어떤 케이크를 보내줬는지 그녀가 보낸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진에는 설명이 없어서 왜 이 사진을 나에게 보냈는지 혼자 짐작할 뿐이다. 아마 글은 쓸 생각이 없나 보다 생각한다. 그래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뛰어난 것 같은데 그녀를 불편하게 할지 몰라 필담을 나누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


사진을 보내려고 내게 연락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그 사진들이 의미하는 건 ‘나는 이렇게 맛있는 걸 먹었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너와 함께 먹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사진과 같은 매체마저 없다면 육 개월에 한두 번 만나는 정도로 친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곧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따로 연락해서 만나는 사이가 아니고 협회에 행사가 있을 때만 보는 사이인데 다행스럽게도 협회 담당자가 이사를 가도 행사가 있을 때 와도 괜찮다고 한다. 이런 호의 덕분에 나는 남주 씨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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