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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정 Jul 01. 2024

워킹맘이 전업 주부가 되기 어려운 이유.

백수가 된 지 1년이 넘어간다. 그러니깐 워킹맘에서 전업 주부로 잠시 직업을 변경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조금 쉬어가도 될 텐데 늘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하다. 밤마다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이 하염없이 넘쳐나 불안증세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니 정신마저 사나워져 잠도 잘 오지 않는다.


내가 일을 한 기간은 항공사에서 18년, 필라테스 강사로 1년, 그전에 다른 회사도 다녔으니 총 20년이 넘게 일을 했다. 그리고 2008년 첫 아이를 출산하고 난 워커에서 워킹맘이 되었다. 그전에 한 가지 다시 생각을 해 볼 문제가 있다. 난 왜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답은 돈이 필요해서. 그럼 돈이 왜 필요하지? 당연히 먹고 자고 입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사야 하니깐. 아무튼 난 우리 가족들이 살면서 필요한 것들이 있고 그것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일을 해왔다.

워킹맘은 돈을 벌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때문에 일을 그만 두지 못한다. 지금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을 거다. 워킹맘이 전업주부가 되기 어려운 이유라고 해놓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가 싶지만, 워킹맘도 집에 와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그렇지만 집안일을 한다고 해서 누가 돈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회사는 나가면 돈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워킹맘은 한 달에 한 번 혹은 보너스가 나오는 달은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내가 일을 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생긴다.

거의 20년을 내가 일을 하고 대가를 받아왔는데 백수 겸직으로 전업주부를 하고 있는 나는 현재 수입이 없다. 백수이지만 전업 주부라는 직업도 생긴 나는 늦어도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난다. 다 큰 아이들이지만 등교시키는 시간은 아직도 정신이 없다. 앵무새처럼 일어나야지. 얼른 준비해야지를 거의 한 시간이 넘게 말하는데 매일이 데자뷔 같다. 그리고 어제 학교에서 오자마자 주면 되는 서류들은 왜 꼭 바쁜 아침에 꺼내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지. 자기가 벗어 둔 옷과 가방은 왜 항상 엄마에게 어디에게 물어보는지. 아무튼 아침부터 아이들과 한참 푸닥거리며 등교시키고 나면 그 이후는 더욱 암담하다.


전쟁이 휩쓸고 간 듯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가지들과 물 한잔 마신 것 같은데 개수대에 가득 쌓인 컵과 그릇들. 딱히 뭘 많이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쓰레기들은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분리수거 날까지 기다리면 정말 집이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좀 덜 지저분해서 일이 빨리 끝나는 날은 미뤄뒀던 묵은 집안정리를 또 시작해 본다. 가끔은 정리가 아니라 더 어지럽혀지는 날도 있는 것 같다. 분명히 나는 7시부터 쉬지도 않고 움직인 거 같은데 아이들이 돌아 올 시간이 되어 집안을 둘러보면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다. 정말이지 하나도 티가 안 난다. 간혹 옷이라도 하나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더 지저분해 보인다.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했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매직이 일어난다.


워커들은 일을 하면 성과와 실적이라는 결과가 나오는데 전업주부의 일은 뭐랄까? 자연적으로 되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랄까? 설거지도 청소도 빨래도 다 내가 하는 건데 나 빼고 다른 가족들은 자동으로 뿅! 하고 되는 줄 아는 것 같다. 그리고 안되어 있으면 혼자만 불편하다. 그래서 요즘 심한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 생활비 말고 월급을 받고 싶었다. 전업주부는 정말 힘든 일이다. 그리고 대단한 일이다. 벌써 오늘도 하루가 다 지났다. 내일도 출근해서 일 잘해야지.


백수가 된 요즘의 나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을 벌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죄책감이 커져만 갔다. 한편으로는 남편을 탓하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일한 기간이 얼만데! 이 정도도 좀 맘 편하게 쉬면 안 돼?' 이런 불편한 생각을 가지고 쉬면서도 쉬는 게 아닌 백수 생활은 점점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려앉게 하고 자신감도 하락시켰다.


분명 처음 필라테스 강사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일이 정말 잘 풀렸다. 대강으로 수업을 가도 회원님들이 또 언제 수업하러 오냐고 물을 정도였고, 1년 동안 매일 나갔던 센터에서는 일주일의 한번 있는 나의 그룹수업 예약은 항상 치열했다. 수업예약 오픈과 동시에 한 달 치 금요일의 수업은 예약이 꽉 차고 대기하는 회원들이 가득했다. 날 좋아해 줬던 센터는 회원들과도 사이가 좋았고 다른 강사들과도 사이가 좋아서 계속 다니고 싶었지만 딱 하나 거리가 멀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퇴근시간은 그나마 늦어서 차가 막히지 않아서 40분 밖에 안 걸렸지만, 오후에 근무하는 나는 다른 사람들 퇴근할 시간에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퇴근 러시아워를 겪어야 했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씨에는 편도출근시간을 최장 2시간까지 늘려주기도 했었다. 나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그 시기 나는 분명 다른 곳을 가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자만감을 가득 끌어안고 난 아무런 준비도 해놓지 않고 호기롭게 두 번째 퇴사를 했다. 하지만 집 근처에서 새로운 센터로의 취직은 쉽지 않았다. 어쩌다 면접이 잘 되어 일을 시작한 센터는 처음 제시했던 조건과 많이 달랐다. 연이은 면접 실패로 입사지원조차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백수 생활의 시작이었다. 남편이 뭐라고 하진 않아도 돈을 벌지 않는 나를 원망하는 것만 같았다. 어떨 때는 돈을 벌지 않는 나는 가치가 없는가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점점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싫고 면접을 보러 가도 계속 주눅이 들었다. 필라테스 강사하려고 18년 동안 다닌 대기업도 때려치웠는데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모두 날 나무라는 것 같았다.


"이 철책은 웃기지 처음엔 싫지만 차츰 익숙해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 없어 그게 '길들여진다'라는 거야."

-영화 쇼생크 탈출 중


회사를 다니면서 난 항상 내 월급이 일하는 것에 비해 적다고 항상 투덜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매달 나오는 월급이라는 철책에 나를 가두어뒀던 것 같다. 철책을 벗어나서 난 분명 자유를 얻었지만 두려웠다.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어.

마치 떨어지는 것 같은 악몽을 꾸지 그리고 겁에 질려서 깨어나게 돼

가끔 내가 어디 있는지를 깨닫는데 오래 걸리더라고

놈들이 날 집으로 보낼 수 있게 총을 사서 식료품점을 털어야 할지도 몰라

그런 다음 일종의 보너스로 점장을 쏴 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기엔 너무 늙은 것 같아.

난 여기에 더 이상 있기 싫어 항상 두려움에 떠는 건 지쳤어.

그래서 여기에 머무르지 않기로 했다네!

아마 신경 쓸 사람도 없을 거야 나처럼 늙은 범죄자 따위...

추신-목에 칼을 들이대서 미안하다고 헤이우드에게 대신 전해줘

나쁜 감정은 없었어.

브룩스 보냄"

영화 쇼생크 탈출 중


가석방이 된 늙은 복역수 브룩스는 오랜 기간 철책에 길들여져서 희망도 없는 자유를 느끼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철책에 길들여진 그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유는 곧 방황으로 바뀌고 방황의 시간이 길어지자 나도 다시 권총을 들어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필라테스에 자신감이 없어진 지금 할 줄 아는 거라고 공항일 밖에 없으니, 다시 항공과 관련된 업무를 찾아 구인공고를 뒤적거리게 되었다. 직무 강사로 수년간 일을 한 나에겐 분명 항공사 규정도 출입국 규정도 어렵지 않아 지원해 볼까? 하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다.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하고 수입이 줄어서 생활이 빠듯해져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수입이 줄어드니 당장 생활이 힘들어졌다. 맞벌이로 살다가 수입이 반토막이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아이들은 점점 커가니 들어가는 돈도 많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도 많아지는데 충분히 만족을 시켜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아무 일이나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필라테스는 놓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인지 주변의 눈치 때문이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난 운동으로 계속 먹고살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일단 필라테스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규직으로 일을 하는 건 무리가 있어 일당을 주는 포장 아르바이트에 지원을 했다. 그것도 사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다른 아르바이트 사이트보다는 허들이 낮은 당근마켓에서도 알바를 구하길래 여러 번 지원을 해봤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항공사와 필라테스 강사 외에는 아무런 경력도 없는 아줌마를 쉽게 일을 시켜주기 쉽지 않을 테니깐.


그러다 한 곳에서 연락이 와서 일을 하러 나갔다. 어떤 일인지 모르니 긴장이 되었다. 그곳은 사이즈별로 다양한 지퍼팩을 박스에 담고 포장을 하는 곳이었다. 박스를 접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해야 해서 손가락과 손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서 아파도 참고 일을 했다. 내가 여기는 3일 동안 일을 했다. 이런 곳도 텃세가 있는 건지 이미 베테랑으로 보이시는 분이 분명히 가르쳐주는 것 같은데 자꾸만 뭐라고 하는 듯했다. 아직 손이 익숙하지도 않은데 자꾸만 한 번에 하라고 재촉을 했다. 첫날은 그분 집이 근처길래 퇴근길에 내가 집까지 태워주기도 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분이 "내일 근육통으로 고생 좀 할 거예요."라고 말하길래 항상 운동 때문에 근육통은 달고 살았기에 "약간의 근육통은 즐기는 편이에요."라고 대답을 했었다. 그런데 다음날 통증이 동반되었다. 이건 근육통이 아니었다. 안 쓰는 부위를 몇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썼더니 염증이 생긴 건지 붉게 퉁퉁 부어오른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일은 나가야 했기에 나갔는데 어제 그분이 나에게 "왜? 이건  즐길만한 근육통은 아니었나 보죠?"라고 말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빴다. 다행히 마지막 날 함께 일한 태국인 직원분이 과자선물과 함께 예쁘다는 칭찬을 연신 해주시는 바람에 그 업체가 최악의 이미지로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도 그분의 발언은 참 무례했던 것 같다.


그 후에 또 다른 업체로 두 번째 알바를 나가게 되었다. 첫 번째 업체에서 불쾌한 경험은 있었지만 그래도 한 번 쌓은 경험은 처음 포장알바를 나갔을 때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두 번째 일을 하러 간 곳은 박스를 접고 내용품을 담고 다시 그 박스를 밀봉하는 작업이었다. 크게 세 가지 공정이었기에 같이 아르바이트하시는 분들과 서로 교대로 해가면서 해서 그런지 분명히 엄청 힘든 하루였는데 할만했다. 특히나 내가 일하는 테이블에 함께 일한 분들이 셋이 계속 함께 일해 온 사람들처럼 호흡이 척척 맞아서 진짜 일하는 맛이 있었다. 덕분에 함께 호흡이 잘 맞았던 그분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가끔 하고 지낸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사장님도 세 명이 일을 너무 잘해서 정말 놀랐다고 하셨다. 이 두 번째 업체는 사장님 내외가 너무 잘해주셔서 힘들어도 더 해주고 싶은 곳이었다. 아쉽지만 일이 계속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라서 한동안 일이 없다고 나중에 또 일이 있으면 연락을 줘도 되냐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린 일주일간의 일을 마쳤다. 난 바로 경력을 쌓은 자신감으로 바로 세 번째 업체로 일을 하러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애초에 하루 알바로 갔었는데 하루 더 부탁을 하셔서 이틀 동안 일을 했다. 일을 마치고 가려는데 다음에 또 구인글 올리면 연락을 달라고 하시길래 알겠다고 대답하고 돌아왔다. 며칠 후 같은 업체의 구인글이 올라왔고 나는 연락을 했다. 그래서 나는 또 이틀간 일을 하게 되었다. 지난번에는 구인글에 연락을 달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퇴근할 때가 되니 내일 또 와 줄 수 있냐고 물어보신다. 두 번째 업체와 세 번째 업체에서는 내가 일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나 보다. 이렇게 나는 두 번째 업체와 세 번째 업체에서 인정을 받았고 일이 있으면 연락을 따로 주시게 되었다. 난 생각보다 이 일이 맘에 들었다. 단순히 반복하는 작업이라서 굉장히 힘이 들지만 일단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서 머리가 깨끗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몸이 피곤하니 일을 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소득은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를 필요로 해주고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텅텅 비었던 자신감과 자존감이 조금씩 차는 것 같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는 건 자존감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인 것 같다.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날 인정해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먼저 움직여야만 한다. 무섭다고 두렵다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리 내가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이더라도 알려줄 수가 없다. 나는 그 방법을 알았고 이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믿어주고 인정해 주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행동해야 한다.



난 아무래도 전업주부는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다시 일을 시작하니 활력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도 난 백수생활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늘어서 그게 참 기분이 좋다. 항상 귀찮다고 말하지만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주는 소리가 정말 좋다.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나의 방황의 시간이 동반했지만. 다시 워킹맘과 주부를 병행할 수 있는 경험치를 쌓았으니 레벨업만 남았다.


"희망은 좋은 거죠. 가장 소중한 것이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영화 쇼생크탈출 중


40대 중반이지만 난 여전히 희망을 가져본다. 평생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직 지치기엔 자유를 즐길 시간이 너무 많이 남지 않았는가? 살다 보면 힘든 순간은 또 올 것이다. 나에겐 이제 절대 꺼지지 않을 자신감과 자존감의 불씨가 있기에 다시 키우면 될 것이다. 오늘도 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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