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선고를 받고 대학병원 초진까지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 너무 길고 더뎌 그냥 바쁘게 살기로 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바쁜 시기였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무너지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면 우울감이 몰려왔다. 토끼같은 자식들 생각이 눈앞을 떠나지 않고 어른거렸다. 그 외 내가 이때까지 살면서 저지른 모든 업보와 후회의 감정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괜찮은데 괜찮지가 않았다. 어느 날은 이렇게 초기에 발견한 게 다행이다 싶다가도, 돌아서면 암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죽음의 공포가 나를 둘러쌌다.
아이가 아플때는 마치 세상의 모든 사례를 분석할 듯이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서치하던 나였는데, 막상 내가 아프다고 하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아이의 오랜 병치레에 지친걸까 아니면 나의 현실을 마주하기 싫었던 걸까 알수는 없지만, 나는 진단 후 몇 달 간을 아무일도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어느날 인터넷을 하다가, 갑상선 암에 걸렸는데 주변에서 착한암이니 걱정말라고 한다는 글을 보고 갑자기 슬퍼졌다.
세상에 착한 암이 어디있을까. 진행이 조금 느린건 사실이지만, 그대신 전이와 재발이 잦으며 몸의 호르몬을 조절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질병이라는걸 나도 앓고 나서야 알았다.
당사자를 위로하기 위한 수단으로 착한 암이니 걱정 말라고 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갑상선암이 흔하고 비교적 생존률이 높다고 해서 '별 것 아닌 암'으로 치부받는것은 잘못된 일이다.
아프고 나니 내가 편협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때는 그 어떤 수식어나 설명도 필요없이 그저 잘 될거라고 힘내라고, 진심어린 한 마디로도 충분한 것 같다.
착한 암.
그래 기왕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말로 불리워 진다면, 정말 그 말처럼 재발도 전이도 없이 그저 조용하게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