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사랑한다는 것
“모태솔로는 아니지?”
“모태솔로 맞는데요.”
“설마, 혼전순결주의야?”
“네… 무슨 문제라도?”
같은 수업을 듣는 형과 밥을 먹다가 대뜸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이상형은 어떤지, 수업시간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는지 자꾸 묻는 걸 보니, 나를 누군가와 연결해 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가게 사장님은 웃으시더니 이렇게 물으셨다.
“총각, 군대는 다녀왔어?”
“아직 미필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이 어리지.”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그 말에 반응하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연애관과 신앙에 대해 설명하려 애썼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장 4절
나는 오래전부터 혼전순결을 단순한 금지나 규칙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하나의 태도라고 생각해 왔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서두르기보다 서로를 존중하며 기다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사랑장'이라고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사랑은 순간적인 열정보다 시간을 견디는 힘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때때로 낯설게 여겨진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연애와 관계 경험하는 사회 속에서, 기다림이라는 선택은 종종 미숙함이나 고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학교 1학년 때 선배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야, 너는 연애할 때 꼭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사랑한다면 책임이 필요하죠.”
“그러니까 네가 연애를 못하는 거야. 그 사람 인생인데 왜 네가 책임지려 그래.”
그때 나는 말로 다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에는 분명한 생각이 있었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의 끌림만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었다.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보호’, ‘책임’, ‘존경’,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대신 살아 준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겠다는 의지에 가깝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7절
상대의 마음과 삶을 존중하며,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준비를 하는 것. 나는 그런 마음이 사랑을 더 깊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성욕은 나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창조의 에너지이자, 생명을 이어 가게 하는 소중한 욕구다. 문제는 욕구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좋은 선물도 질서를 벗어나면 쉽게 왜곡된다. 그래서 성은 단순한 쾌락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를 온전히 내어주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기다림은 욕망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을 지키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6장 19절
물론 이런 선택이 언제나 쉽거나 당연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 역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사랑은 결국 상대를 위해 나 자신을 준비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참 많다. 손 편지를 써 주고, 꽃을 선물하고, 함께 요리를 하고, 기쁜 날뿐 아니라 힘든 날에도 곁에 있어 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저는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나중에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제가 깨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저를 빚어 주세요. 내가 원하는 사람을 찾기보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기다림은 때로 외로운 선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기에도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 자신을 준비하며 살아가려 한다. 언젠가 만나게 될 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