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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맑음 Aug 16. 2024

[에세이] 4화 내가 사랑하는 바다

비눗방울 총을 사기로 했다.

4화 내가 사랑하는 바다


나의 장래희망은 비교적 늦게 정해졌다. 장래희망이라기보다 마음의 풍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치관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사랑한 바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나는 겨울에 태어난 마른 나무라고 한다. 사주학적으로 보면 뿌리가 얕고 힘이 약하기에 좋은 사주가 아니라고 한다. 타고난 긍정주의자는 막연히 내 사주가 최고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라는 말을 했다. 신기하게도 나와 함께 사주를 봤던 친구들은 모두 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주였다. 바닷가나 강과 같은 장소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굳이 사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내가 물이 있는 풍경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파란 하늘과 그 속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울렁거리는 푸른 물의 경계가 끝없이 펼쳐진다. 태양을 반쯤 가린 하얀 구름은 층을 이루며 솟아올라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 구름에 이름을 붙인다.


백사장의 모래는 돌이 깨어져서 만들어진 부드러운 융단 같다. 해가 떠오를 때 바다는 햇빛을 받아서 윤슬이라고 불리는 반짝임을 품고 사진으로 차마 담을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본래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나이지만 바다가 나에게 좋다는 말을 신뢰하기로 했다. 이미 좋아했던 것에 이유를 붙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으나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바다는 아름답다. 그리고 미생물에서부터 심해어류, 내가 좋아하는 돌고래와 고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양생물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나는 바다의 풍경만이 아니라 바다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 한계를 알 수 없을 만큼 펼쳐진 수면과 그 아래에 생명체를 품을 수 있는 안온함.


가끔 바다를 닮은 사람을 만났던 것 같다. 극 F 성향의 나는 바다와 같은 사람을 이성적으로 풀어낼 순 없는 것 같다. 첫사랑을 그날의 온도와 습도, 그리고 체온으로 기억하듯이 보고 있자면 바다가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스토커처럼 내 눈에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좋았던 말을 기록했다. 바다를 닮은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 좋았고 적절한 위로를 뱉을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도 누군가를 위로할 기회를 포착하면 머릿속의 어록 사전을 뒤져서 위로를 뱉어냈다.


아마도 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내 이상향은 타인에게 공감하고 위로를 전달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바다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꿈꾸기 전에 되고 싶었던 것은 ‘그릇.’이다. 그릇을 만드는 과정은 기법과 재료에 따라서 다르지만 나는 아름다운 도자기 그릇이 되고 싶었다.


고품질의 점토를 물레에 올린 후에 회전하는 물레 위의 점토를 손과 도구를 이용하여 그릇의 형태로 만든다. 만들어진 그릇을 초벌 건조한다. 서서히 건조해 형태를 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빠르게 건조하면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트리밍이란 과정이 더해진다. 건조 중간에 그릇의 바닥이나 모양을 다듬어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초벌구이한다. 건조된 점토를 가마에 넣어 낮은 온도(약 800~900도)에서 구워낸다. 이 과정에서 점토는 더욱 단단해지고, 불순물이 제거된다.


이번엔 초벌구이한 그릇에 유약을 발라준다. 유약은 그릇의 표면을 매끄럽게 하고, 색상과 광택을 부여한다. 유약은 브러시로 바르거나, 담그거나, 스프레이로 뿌릴 수 있다.


그리고 재벌로 구워준다. 유약이 발린 그릇을 다시 가마에 넣고 높은 온도(약 1200~1300도)에서 구워낸다. 이 과정에서 유약이 녹아 표면을 덮고, 그릇은 더욱 단단해진다.


점토에서 도자기가 되기까지 이토록 많은 기술과 경험이 요구된다. 나는 아주 큰 도자기 그릇이 되고 싶었다. 흔히 ‘사람의 그릇.’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의 됨됨이와 세상을 보는 시각일 것이다.


나는 내가 품은 물을 담을 그릇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다. 그 과정은 가끔은 다툼이었고 가끔은 성찰이었다. 내가 만난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도 모두 내 그릇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던 것 같다.


내 삶에서 벽으로 느껴지는 답답한 일이 닥쳤을 때 나는 바다를 보러 떠나곤 했다. 몸이 아플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바다를 보면서 내 안의 그릇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힘든 이유가 내 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릇이 물을 품기에 적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다. 작은 균열로 물이 새었을지도 모르고 애초에 내가 담고 싶은 만큼 물을 담기엔 크기가 작았을지도 모르다.


바다에 어둠이 내릴 때까지 커피 한잔을 쥐고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그릇을 버리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도자기로 된 그 그릇을 깨버리기로 했다.


쏟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릇이 없어진 자리에도 물은 흘렀다. 애초에 담고자 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릇을 깨버리고 대신 바다가 되기로 결정했다.


바다는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 수면 아래에선 포식자와 피식자가 끊임없이 다툼하고 병들기도 한다. 부서지는 파도는 그곳을 떠도는 인간을 위험하게 한다. 어두운 면까지 포함해서 바다가 좋았다.


바다가 되고 싶다고 결정했지만, 아직 시냇물에 불과할 것 같다. 흐른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대로 흘러가다 보면 언젠간 바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바다가 되고 싶어 했지만, 가끔 어린이의 친구 디즈니에서 방영했던 인어공주의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1989년 개봉된 애니메이션으로 덴마크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바닷속 왕국에서 사는 인어공주 아리엘이 인간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모험을 겪는 내용이다.


인간 세상을 동경하던 인어공주는 인간 왕자 에릭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바다 마녀 우르슬라와 계약을 맺어 목소리를 대가로 다리를 얻어 인간 세상으로 나가게 되지만 결국 다양한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을 찾게 된다.


OST 중에 내가 좋아했던 것은 “Part of your world.” 와 “Under the Sea.”이다. 두 노래는 상반된 이상향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노래는 인간 세상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을 표현한 노래이다.


“그들이 춤추는 걸 보고 싶어. 그것들 주변을 서성이고, 그걸 뭐라고 부르더라? 아, 발!”

“지느러미를 흔들어도 멀리 못가, 뛰고 춤추려면 다리가 필요해.”


두 번째 노래는 바닷가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육지를 동경하는 아리엘을 설득하는 노래이다.  


“해초들은 항상 어느 호수에 서보다 더 푸르러. 공주님은 위로 올라가는 걸 꿈꾸지만 아주 큰 실수하는 거라고요.”

“ 주위를 둘러봐요, 지금 여기 바다 아래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공주님을 감싸고 있는데 뭘 더 원하시는 겁니까?”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의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2000년에 개봉된 인어공주의 속편이다.


아리엘과 에릭의 딸 멜로디. 아리엘은 과거 적인 바다 마녀와 그녀의 동생에게서 멜로디를 보호하기 위해서 바다와의 모든 관계를 끊고 멜로디가 바다에 대해서 모르게 키운다.


성장한 멜로디는 바다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몰래 바다로 나가곤 한다. 아리엘과는 반대로 멜로디는 자신의 목소리를 대가로 다리를 포기하고 꼬리를 얻어 인어가 된다. 멜로디는 바다와 인간 세상 모두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된다.


리턴 투 씨. 바다를 벅차고 세상으로 나왔던 인어공주의 아이는 바다로 돌아가고자 했던 내용이다.


내가 꿈꾸는 것이 무엇이든 결국 내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자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산이 되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들이 되고 싶을 수도 있다. 혹은 논이나 밭이 되고 싶을지도 모른다. 어떤 아이는 커서 경찰차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어디에 머물고 싶은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장소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것 같다.


* * *


직업에 대한 장래희망은 회사원과 작가였습니다. :)

꿈을 크게 꾸지 않는 어린이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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