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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맑음 Aug 21. 2024

[에세이] 6화 긍정주의자라서 다행이다

6화 긍정주의자라서 다행이다


오늘은 내 사고방식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자신을 긍정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긍정주의자.’라는 정의가 사전적으로 맞는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긍정주의자(Optimist)는 상황이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와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긍정주의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적인 면을 보려고 하며, 문제나 도전이 발생했을 때 이를 극복할 기회로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실패나 좌절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다시 시도할 용기를 가지며,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합니다.


위의 내용을 확인하니 객관적으로도 나는 긍정주의자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좀 이상한 긍정주의자인 것 같다. 상황이 마냥 낙관적일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에 최악만 닥치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제일 좋아하는 속담은 “산 입에 거미줄 치랴.”이다. 사람은 살아있는 이상 어떻게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최고의 치료제는 “시간.”이다. 뒤돌아가는 법 없이 앞으로만 전진하는 시간은 아픈 기억과 몸을 치유하는 최고의 명약이다.


힘들 때 한번 꾹 참고나면 언젠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인터넷에서 본 일화가 기억난다. 유치원 앞의 놀이터에는 공룡 조각상이 있었다고 한다. 철거 과정 중에 공룡 조각의 목이 부러졌는데 거기에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공룡이 아프지 않길 바라며 밴드를 붙여준 것이다.


아이들은 이미 멸종한 공룡이 다시 사라질까 봐 걱정했던 것일까. 그 순수한 마음이 귀엽다.


우리에게도 이미 밴드가 있으니 다행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값으로 찾아온다.


몸이 아플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결국 수술을 할 것이고, 괜찮아질 것이다. 언젠가 웃으면서 “그렇게 안 좋을떄도 있었지.”하고 떠들게 될 것이다. 나는 무용담처럼 병마를 이기고 승리한 장군이 될 것임을 알았다.


눈이 오는 날에 하얀 그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양이들은 추운 것을 싫어하는데 그들은 특유의 균형 감각으로 이미 발자국이 난 자리로만 걸음을 옮긴다.


문제와 도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앞서 걸은 자의 발자국을 보려고 한다. 이 길은 누군가가 걸었던 길이고 그중 누군가는 성공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의 능력은 대부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믿음이란 것은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내 힘이 된다. 학창 시절 나는 운동을 잘하는 여자아이였다. 체육 시간에 시범을 보이는 일이 있으면 대부분 내가 조교가 되었다. 도 대회에서 우승을 해본 적도 있다.


운동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스포츠에는 [마의 장벽]이란 것이 존재한다. 나는 그것이 스스로 정해둔 한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한계에 대해서 가장 잘 알려진 비유는 벼룩이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실험에서는 벼룩을 유리병에 넣고 뚜껑을 닫아둔다. 벼룩은 본래 매우 높이 뛸 수 있는 곤충인데, 뚜껑에 계속 부딪히면서 더 이상 높이 뛸 수 없다고 학습한다. 시간이 지나면 벼룩은 뚜껑에 닿지 않을 정도로만 뛰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뚜껑을 제거해도 벼룩은 더 이상 이전처럼 높이 뛰지 않는다. 이미 한계를 정했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깰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벽이 된다. 더 빨리, 더 높게 뛸 수 있는데도 최고기록 앞에서 주춤하게 된다. 이미 뇌가 제어 명령을 몸에 내리는 것이다. 그러다 기록을 깬 누군가가 등장한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후발주자들도 기록을 넘어선다.


스포츠에서 기록을 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인 것 같다.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주춤하지 않으면 언젠가 해낼 수 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삶의 대부분이 그런 것 같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성공에 한발짝 다가선다.


내가 타고나길 긍정주의자인지 긍정주의를 학습한 것인지 이제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긍정주의자가 된 이유는 어떠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삶은 인간에게 무한한 행운을 주지도 않고, 무한한 불행을 주지도 않는다. 행운이 쥐어졌을 때는 그 행운을 즐기고 불행이 쥐어졌을 때는 언젠가 이 불행이 끝날 것을 믿는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달리기가 있다. 달리기란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한 아이였다. 늘 몸의 한군데는 아팠고 크고 작은 수술을 했으며 늘 약물 치료를 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운동을 그만두었던 이유도 관절을 혹사해 청소년 관절염을 얻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배신당하면 화가 난다. 더 화가 날 때는 내 몸이 나를 배신할 때다.


건강해지고 싶은데 도무지 도와주질 않는다. 아픈 건 지긋지긋하고 병원의 소독약 냄새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향이다.


몸이 아플 때는 인과관계가 있길 바란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혹은 전생에 큰 죄라도 지어서 나만 이렇게 아픈 것인가하고 한탄하게 된다.


“교수님,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아직 밝혀진 원인이 없습니다. 일종의 기능이상으로 보이고 그냥 운이 없는 겁니다.”


교수님과 나누었던 대화였다. 이번에 수술하기 전뿐 아니라 다른 질병을 얻었을 때도 물었던 내용이었다.


“운이 없다니! 왜 나만 운이 없단 말인가!”


내가 아픈 것이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유력한 용의자는 늘 가까이에 있다. 전염병이라면 옮겨버리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혼자 아파야 했다.


그럴 땐 포기처럼 긍정주의자가 된다. 이미 아픈 걸 어쩌겠는가. 병을 알았으니 치료하기 위해서 방법을 찾는 게 경제적인 것 같아서 그렇게 한다.


긍정주의자들의 문제 해결법이 보통 이러하다고 한다. 긍정주의자는 문제를 해결할 때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을 선호한다. 그들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실패하더라도 이를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한다고 한다.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르는 힘이 있다. 좌절이나 실패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실패는 최종결과가 아니라 성공을 향하는 과정의 일부임을 믿는다.


긍정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 고민해보자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인 것 같다.


행운과 불행처럼 성공과 실패도 삶에서 서로 우위를 다투며 엎치락뒤치락하는 라이벌이다.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법을 시도했을 때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는지 원인부터 분석한다. 원인을 알았으면 이번엔 방법을 바꿔서 시도한다.


회사에서 후임을 맞이할 때 내가 시도하는 방법은 [작은 성공 경험]의 누적이다. 신입이 성공할 수 있을 만큼만 도전적인 과제를 계속 던지면서 성공 경험을 학습하기를 바란다. 작은 성공이 모이면 큰 성공을 향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삶도 비슷한 것 같다. 당장 희망이 보이지 않는 밤이라면 작은 빛부터 찾아본다. 촛불을 켜보고 음악도 틀어본다. 그러다 보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지 않을까.


만약 내가 긍정주의로 살기를 결정한 사람이라면 이유는 하나일 것 같다. 부정적으로 사는 것보다 긍정주의로 사는 게 내 정신 건강에 더 좋았다.


나는 지극히 경제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로 긍정주의자가 되길 선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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