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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un 14. 2022

해외에서의 삶은 어떨까?

25살,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

아직도 생생하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꿈을 꾸던 그 시간들이.


한국 나이로 11살 무렵이었을까? 주변 친구들이 필리핀으로, 캐나다로 단기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을 보고 나도 항상 외국으로의 유학을 꿈꿨다. 언니와 남동생이 투니버스, 챔스와 같은 만화 영화를 즐겨보던 때 나는 CSI나 도전! 슈퍼모델을 보고는 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항상 외국에서의 삶을 꿈꿨다.


운이 좋았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은 다 하고 다 먹고 자랐고, 부족함 없이 컸기에.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또래 부모님보다는 나이가 많았고, 조금은 가부장적이기도 했다. 보수적인 아빠는 어린 나를 외국에 보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꿈만 꾸던 시간들이 지나고, 똘똘하고 야무지던 나는 입시에 실패했다. 가고 싶었던 학과였던 의류학과에 진학했지만, 그저 그런 수도권 4년제 대학을 다녔다. 그때 당시 해외여행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유행에 뒤떨어질 수 없었던 나는 20살부터 방학마다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하지만 학벌 콤플렉스를 견디지 못했고, 1년간 편입 공부를 한다면서 휴학을 했다. 실패했다. 그저 그런 4년제 대학 복학 후, 졸업 패션쇼를 마치고 난 뒤에 친구가 있는 캐나다를 방문했다.


시간이 훌쩍 지나고서야 하고 싶은 일은 말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에게서 본인의 꿈 많았던 젊은 날을 보아서였을까, 유학을 가겠다는 나를 아빠는 말리지 못했고, 그렇게 준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팬데믹이 생겨났고, 나는 그렇게 1년을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으로만 들어야 했다.


2021년 4월, 26살 인생 처음으로 외국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겼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만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것도 바로 여기 캐나다 토론토에서.


왜 캐나다였을까? 나는 패션 전공자인데, 왜 패션으로 유명한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캐나다였을까?


여기로 이민을 왔던 친구의 영향도 있었고, 미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유학생들에게 비자를 잘 주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다(캐나다는 컬리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 3년짜리 Post Graduated Work Permit이라는 일할 수 있는 퍼밋(비자)을 주고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영주권 취득이 조금 더 쉽다고 생각한 것도 맞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에 왔다.


캐나다에 온지도 벌써 14개월 차다. 14개월 중에서 디지털 마케팅 인턴으로 근무도 해보고, 캐나다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학교 코스도 모두 마쳤다. 한국과는 다른, 뼈가 시릴 정도의 추위를 겪어보기도 하고, 사막과 같은 건조함을 느끼기도, 그리고 한국의 물이 얼마나 좋은 지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런 나의 삶을 기록하고자 한다. 쉽게 찾아온 기회가 아니었기에.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도 기록하고, 또 나의 소중한 남자 친구와 관계도 기록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이 해외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지만,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알려주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위해 이곳에서의 삶은 어떤지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 훗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참고용으로만 쓰더라도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내가 외국에서의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 두려웠던 마음을 다른 사람 글을 보고 해소하기도 했으니, 나 또한 외국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내가 알고 싶었던 부분들을 속 시원하게 알 수 있었으면 했고, 애매모호하게 쓰여 있던 글을 보고 화가 났던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한 사람이어도 좋으니 나에게서 희망을 보고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가 무지개다.


변덕스러운 어제의 날씨의 끝은 저렇게 아름답고 큰 무지개였다. 흐렸다가 맑았다가 비가 왔다가 했던 날씨에 불평하던 나 자신은 어느덧 잊고 무지개를 보며 마냥 행복해하는 나를 만났다. 우리의 삶도 어둡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아름다운 무지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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