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에서 살아남기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미루기도 오래 미뤘다.
노트북이 말썽이었다는 핑계로, 삶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참 오래도 미뤘다.
알량한 새해 목표가 다시 나를 글을 쓰도록 이끌었고, 이게 또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을 서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찔끔찔끔 시작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냐, 하고 자위해 본다.
나는 외노자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늘 버벅거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이지만, 삶이 꽤나 재밌다.
지난 6월, 졸업했다는 이유로, 더 이상 학생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다시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급하게 이력서를 만들고 200군데가 넘는 곳에 무작정 이력서를 넣었다. 여기는 진짜 인맥 없으면 힘들더라. 사람 일은 참 신기하다. 한 번 연락오기 시작하니까 우후죽순으로 오기 시작했고, 영어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그중 한 군데서 연락이 왔는데, 내가 지원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던 곳이었다.
직군은 패션 디자이너 어시스턴트.
내가 가장하고 싶었던 직군이었기에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면접을 보러 갈 주소를 받고 보니 이게 웬걸,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간절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1차 면접을 봤다.
정말 떨렸지만, 15분이면 끝날 면접 이랬는데 1시간을 얘기하다 나왔다. 감이 좋았다.
2차 면접은 비디오 콜로 간단히 내가 원하는 연봉이나 일하게 될 환경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고 했다.
그렇게 2차 비디오 콜까지 마치고 3차 테스트 이야기를 들었다.
일러스트 테스트였다. 그럼 그렇지, 디자이너 하려면 일러스트를 할 줄 알아야지.
근데 어떡해 나는 못하는데.
그래도 외국 사니까 잘한다고 거짓말 한 번 해보고, 테스트를 보기 시작했다.
망했다. 문제 이해를 아예 잘못했기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결과는 최종 탈락.
2주가 지나고 자꾸 생각났다. 아쉬워서.
그래서 그냥 무급이라도 좋으니 인턴으로 써달라고 했다.
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잃을 건 없으니 답장도 기대하지 않고 써 내려갔던 이메일이었는데, 1시간 정도 뒤에 바로 답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
그렇게 지독한 인연이 시작됐고, 같이 일하는 친구는 6월부터 연봉받으면서 다녔는데,
나는 7월부터 무급으로 일했다는 생각에 분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내린 선택이니 분하고 억울할 일이 뭐가 있겠냐며, 경력이라도 쌓자 하는 순간 마음이 나아졌다.
7월이 지나고, 8월이 지나고, 9월, 10월.. 무작정 버티니 나한테 먼저 일자리 제안을 해왔다.
당연히 풀타임 제안일 줄 알았는데, 브랜드 론칭이 아직 안된대서 파트타임으로 먼저 일해보라고 했다.
집도 가깝고 최저 시급보다 훨씬 높은 시급이라 알겠다고 했다.
그래서 현재는 주에 25시간씩 일하고 있다.
이렇게 사는 외노자의 삶도 나쁘지 않다.
늘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마주본다는 것은 가끔 감당하기 힘들지만,
나를 억지로라도 더 배울 수 있게끔 해주고 있다.
내일은 주말이고, 다른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게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세미 직장인이지만 직장인이 되어보니 금요일 밤이 가장 관대해지고 설렌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내가 글을 쓸 수 있게끔 도와준 것 같다.
한 번 써내려가니 기분이 좋다. 이 기분을 잊지 말아야지.
감정의 동물인 인간은 또 이 기분에 속아 자주 글을 써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진짜 자주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