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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ul 09. 2024

아빠가 가진 것을 얻기까지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필리핀에서 이민 온 분들이고, 내 남자친구는 그들 사이에서 나온 2세이다. 그리고 나의 가장 친한 외국인 친구는 필리핀에서 온 친구이고, 나와 남자친구는 종종 그와 함께 만나고는 한다. 필리핀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해서, 나는 차마 알지도 못했던 그들의 삶을 이야기해 줄 때마다 참 순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커왔는지, 그러기 위해서 아빠가 자신의 가난을 이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게 되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참 겸손해지고는 한다.


한국이 잘 사는 나라라고 해도,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 참 안전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도 많고, 이게 현대 삶이라고? 싶은 정도의 사람도 많다. 종종 남자친구가 필리핀 사람들의 진짜 삶을 말할 때마다 되묻는 질문이 너무 순진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돈이 좋고, 돈을 좇는 삶을 살아온 것도 맞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아빠와 엄마가 우리를 이렇게까지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을지 생각하면 더 겸손하게 살아야지, 내가 베풀 수 있을 만큼 베풀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개인이 더 해내갈 수 있을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더 자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원래 꿈꾸던 삶, 내가 어떻게 하면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게 가끔은 죄책감이 든다. 나만 잘 산다고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남자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종종 이야기해 주고는 하는데, 인종이 다양한 캐나다와는 달리 한국은 단일 민족이라 하지 않았나. 남자친구가 어린 시절 동경하던 백인들의 모습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특혜들이 나의 어린 시절과 조금은 닮아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남자친구가 느꼈던 그런 부러움이나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부모님께 감사하기도 하다. 안전한 동네에서 안전하게 자란 것, 살면서 돈 때문에 친구들에게 얼굴 붉힐 일 없고 남들이 했다는 것은 한 번쯤 다 해본 삶이라는 것 등 이제야 부모님이 내게 안겨주었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야 이런 것들을 깨닫는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것들이 결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은 마음이 무겁고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돈에 눈이 멀어 사람을 내치고 이용해 먹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늘 경계하고 살아야지, 내 부모에게, 나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해 본다.


참으로 부끄러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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