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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ul 16. 2024

아빠는 언니의 진심이 듣고 싶었을 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언니가 아빠와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둘이 관계가 시작되고 난 8년 뒤에 이야기를 꺼냈고, 8년 동안 숨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충격받을 부모님을 대신해 2-3년으로 줄이라고 이야기해 줬다. 우리 언니는 내가 본 사람 중에 최악의 커뮤니케이터로,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조차 캐나다에 있는 내 힘을 빌려 이야기를 했다.


한동안 후폭풍이 지나가고 다시 조용해졌지만, 나는 언니에게 아빠는 언니의 진심이, 언니의 생각이 듣고 싶은 것일 테니 언니가 먼저 다가가보라고 했다. 예상외로 완강하고 감정적으로 나오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언니를 더 잘 아는듯했다. 이 결혼을 반대하고 못하게 말리면 언니는 시집을 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아빠는 속상함을 내비쳤지만, 내 눈에는 언니가 조금 더 진심으로 다가가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였다.


이 세상에는 부모가 간섭을 해야 할 문제가 있고, 함께 대화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있지만 우리 언니는 엄마와 아빠에게서 아직까지도,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너무 두려워하고 회피했다. 언니에게 언제까지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니 편지라도 써보고, 아빠한테 장문 카톡이라도 보내라고 일러뒀다.


3일 전이었나, 언니는 아빠에게 손 편지를 썼다고 했고, 아빠는 그에 '편지 써줘서 고맙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아닌 사람이 보기에는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 싶겠지만, 이 가족들과 평생 함께 했던 내 입장에서는 이 관계가 회복의 시작이라고 보였다. 첫 딸이라고 언니를 어려워하기만 하던 아빠와, 그런 아빠를 두려워하던 언니 사이가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아빠는 언니가 한 발짝 다가와주길 기대했고, 진심으로 아빠에게 언니의 생각을 알리기를 바랐다. 언니는 서툴지만 편지로 그 이야기를 전했고, 아빠는 언니의 그런 마음을 알아주었다. 언니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알기에.


서른이 된 딸을 언제까지 품고 살 수 있을까. 아빠도 엄마도 자신의 인생에 딸을 시집보내는 게 처음이기에 서툴렀던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본인들에게는 부족한 게 투성이인 딸이 밑도 끝도 없이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겠지. 지루한 듯 재미있는 시트콤 같은 가족이 우리 가족이다.


아빠가 언니에게 마음을 열어 다행이고, 편지로라도 아빠에게 다가가고 싶었던 언니도 대견하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고, 부모 뜻대로만 움직이는 자식도 없다. 30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딸과 더 가까워진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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