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어 이름이 있으신가요?

민선에서 Sean이 되기까지

by Sean

외국으로 유학을 오는 사람이라면, 혹은 한국에서 영어학원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혹은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 보는 영어이름.


나는 항상 영어 이름이 가지고 싶었는데, 초등학교 때 영어 학원에서 지어준 줄리아라는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여자 같은 이름이 싫었다. 나는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원피스나 분홍색의 옷을 입지 않았고, 조금 더 중성적인 것을 좋아했다. 영어 이름 정하기 전에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도 꽤나 많았다. 그리고 동양인에 어울리지 않는 영어 이름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는 경고도 꽤 받았다. 그런데 이름이 애솔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 영어로는 asshole로 들릴 텐데.


처음에는 내 이름인 민선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M으로 시작하는 이름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진 이름이 많았고, 마음에 드는 건 너무 옛날 이름이라던지, 혹은 너무 유니크해서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들으면 계속 질문할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영어 이름은 너무 유니크해도 사람들이 계속 물어봐서 귀찮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니까 스킵.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는 말에 지겨워져서 그냥 한국 이름을 써야겠다 싶었다. 너무 여자인 이름도 싫고(까다로운 거 안다) 내가 가지고 싶은 M으로 시작하는 이름도 없었으니. 캐나다 컬리지에서는 내 이름인 Minseon을 썼다. 하지만 영어에는 eo발음이 없기에 내 이름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민시연, 민시온, 심지어 민쎄옹(프랑스식 발음)까지. 내 이름을 부르는데 내 이름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출석에서 내 이름을 놓치곤 했다.


이럴 바엔 그냥 영어 이름 하나라도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리 아빠가 지어준 내 이름이 한 번도 좋았거나 애착을 가진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다르게 불리니 뭔가 계속 신경이 거슬렸다.


IMG_0853.HEIC
IMG_9730.HEIC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날 Sean으로 안다


너무 여자 이름도 아니고, 내 이름과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민선의 민을 쓰기엔 너무 중국인 같고, 선의 써니를 하기엔 너무 촌스러웠다. 써니라는 이름 진짜 싫다. 미니도 싫었다. 나는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한 편인데 진짜 나를 소개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러다가 seon에서 sean으로만 바꿔봤다. 영어 이름에 션도 있었다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지?


Sean이라는 이름이 남자가 많이 쓰는 이름이라는 걸 안다. 종종 내가 션이라고 하면 다시 한번 묻는 경우도 있고, 내가 아닌 제삼자가 내 이름을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나를 남자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지만, 나는 왠지 션이 좋았다. 너무 여자 이름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자만 쓰는 이름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중성적인 느낌이 가득한, 그리고 너무 길지 않은 이름. 그래, 나는 션이다.


션이라는 뜻도 '신의 은총' 혹은 '신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를 가지지 않기로 선택했지만, 기독교인 우리 엄마에게는 정말 선물 같은 이름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니 나쁠 것도 없었다. 아빠는 끝까지 써니라는 이름을 쓰길 바랐지만, 사주에 화가 많은 나는 이름까지 해를 넣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캐나다에서 내 이름은 Sean이다. 션, 종종 민션이라고 불러주시는 교수님도 있었는데 그때 알아차릴걸 그랬다. 내가 종종 Minseon이라고 하면 '민'이라고만 부르거나 Minson이라고 받아 적는 사람도 많아서 그냥 sean이라고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누구는 인도 사람을 보라면서,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인데도 그냥 쓰지 않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그냥 내가 더 편한 쪽으로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이제 내 생각이다.


갑자기 너무 백인 이름이나 할머니 이름을 쓰면 웃기기도 하겠지만, 영어 이름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찾아보지 않으려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당신의 영어 이름은 무엇인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침은 따뜻하게 누룽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