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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따뜻하게 누룽지로

일상으로 복귀

by Sean

체감 온도 영하 18도.


웬만해선 아침을 꼭 챙겨 먹는 나, 우리 엄마가 어릴 때부터 만들어 놓은 나의 습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귀찮아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침을 챙겨 먹는 내 모습이 종종 대견할 때가 있다. 오늘은 추우니 따뜻하게 누룽지를 끓였다. 간단하게 김이랑 김치랑.


푼타카나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토론토로 돌아왔을 때 맞이한 추위, 아 여기가 토론토지. 이번 겨울은 덜 춥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긴장을 풀면 안 됐다. 하, 일주일 만에 출근한 사무실은 혼돈 그 자체였다. 그래, 한가해서 시간이 안가는 것보다는 정신없이 바쁜 편이 낫지.


같이 일하는 B가 3주간 가족들을 만나러 브라질로 돌아가있는 상태였기에 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씨 생리 직전이라 몸도 무거운데 일까지 많으니 괜스레 두통이 생기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실제로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해야 할 미팅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영어로 하는 미팅은 내게 듣기 평가와 같다. 첫 10분은 그래도 집중해서 듣는 편이지만 그 뒤로는 나도 그냥 멍하니 있을 때가 많다. 휴가에서 돌아온 직후라 그런지 누가 귀를 틀어 막아놓은 것 같았다.


IMG_3019.JPG 양말 디자인 중. 브랜드 런칭이 또 다시 뒤로 밀렸다.


점심으로 싸간 농심 튀김우동 작은 컵을 먹으면서 그래도 이 바쁨이 그리웠던 것 같기도 했다. 고작 일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온 것뿐인데. 나는 자극에 물들어서 바쁜 걸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내 성향이 그런 건지 모르겠다. 가벼운 두통과 함께 내일은 뭘 싸오나,와 같은 걱정도 들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점심도 만들어서 가는 편이다. 매번 어떤 메뉴를 싸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다. 이제서야 엄마가 왜 저녁 고민을 매일 달고 사는지 알게됐다(세상 모든 주부/어머님/워킹맘 분들 존경합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어떤 걸 싸가야 할지, 저녁도 만들어서 먹어야 하는데 점심까지 요리해야 하니 어떨 때는 그냥 3분 요리, 컵라면을 들고 가기도 한다. 건강하게 먹자고 다짐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나는 나와 타협하고 있다. 3분 요리나 컵라면 사는 것보다 밖에서 사 와서 먹는 게 훨씬 비싸니까, 그래도 가성비는 좋으니까,라고 스스로 자위하기도 한다. 나랑 타협하기 싫었는데!


푼타카나에 일주일 있다 보니 토론토의 추위가 그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방 안에 들어가면 느껴지던 뭉근한 습함과 방충망이 없어 환기도 시키지 못해 답답했던 공기가 은근히 싫었던 모양이다. 내가 살고 있는 400 스퀘어 피트 콘도에 비하면 매우 넓은 방이었지만, 나는 내 취향이 잔뜩 묻은 내 집이 더 좋더라.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작은 공간이고, 또 적당히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이런 휴가가 나의 일상을 더 소중하게 해 준다. 아무리 좋은 휴가라고 해도 집만큼 좋은 곳은 없는 듯하다. 매번 여행을 다녀오면서 느끼는 감정이지만 왜 평소에는 집이 이렇게 지루할 때가 많은지, 인간은 참 어리석고 재밌다. 일상을 여행하는 것처럼 살라는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하나의 주제로 무언가를 써내려 간다기보다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써 내려간다는 게 참 매력적이다. 무조건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도 없고, 나의 이야기를 쓰니 스스로 치유하는 느낌도 든다. 글을 써내려 가면서 나를 치유하고 있는 것 같다. 하루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라던지, 아니면 이별, 슬픔 뭐 그런 것들. 글이 주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낀다. 나의 하루를 돌아보고, 또 내가 놓친 부분은 무엇인지, 어떤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지 찾는 게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해야해서 하는 글쓰기가 아닌, 내가 즐기면서, 강박을 가지지 않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풍요롭게 하는지 이제야 알아간다. 내 글 속에 담긴 따뜻함을 누군가는 알아줄거라고 믿는다.


아, 내일 아침에도 따뜻한 누룽지나 끓여 먹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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