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나의 그릇
나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세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나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유난히 욕심이 많은 편이었다. 다들 알고 있는 둘째 콤플렉스, 둘째 신드롬이 나에게도 있었던 듯하다. 특별히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했기에 챙겨줄 필요가 없었다는 말, 너는 손이 참 덜 갔다는 말, 이런 말들이 사실 나는 억울하기도 했다. 손이 가지 않게끔 만들면 중간에서 더 사랑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던 내 마음도 몰라주고.
그리고 하고 싶은 게 유독 많았다. 쓸데없는 자잘한 지식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나는, 어릴 때부터 야무지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던 나는 참 이것저것 일도 많이 벌렸다. 매년 친구들과 경쟁하듯 여행 가는 건 물론이고, 사업도 자그맣게 해 보고, 또 어디서 보고 들은 건 많아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겠다며 이것저것 해본 경험이 꽤나 된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끝냈다는 게 없다는 사실은, 조금의 강박증과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기회였다. 나는 참 의지도 없고, 뭐 하나 제대로 끝내는 것도 없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면서 커왔다. 무엇이든 중간은 하지만, 그 어떤 것 하나 제대로 해내거나, 그렇다고 뼈아픈 패배를 맛보지도 않는, 그냥 진짜 그런 인생.
나는 그냥 그런 인생을 살기 싫었다. 무엇을 배우든 곧잘 하던 나는 항상 중간 정도만 했다. 춤도 중간 정도만 추고, 노래도 중간 정도로 잘하고, 영어도 중간 정도만 하고, 지금 쓰는 브런치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가 항상 무엇을 끝낼 수 없는 끈기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런 나에게 브런치가 다른 관점을 주기 시작했다. 매일 내가 글을 쓰기를 시작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브런치에서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기 시작하면서 나는 작가라고, 에세이스트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가 진짜 작가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냥 가볍게 글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많던 적던, 내가 나에게 '작가'라는 타이틀, 즉 정체성을 부여하고 나니 나는 작가가 되어있었다. 남이 네가 무슨 작가냐고 말하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냥 나는 내가 작가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작가다. 언젠가 꼭 남들에게 희망을 주고, 남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작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매일 글 쓰는 연습을 브런치에 하자,라고 생각하니 이제는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어가는 것 같다. 여기는 나의 공간이고, 작가인 나 션의 작업실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푼타카나에서 '비상식적 성공법칙'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자기 자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기 시작하면 정말로 자신이 그렇게 된다고 뇌가 착각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끝내주는 작가야,라는 식으로 정체성을 부여하고 셀프 이미지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하면 포기하던 것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업가라면 매출을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 있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나 역시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난 후에는 내가 작가임을 믿지 않았지만, 그냥 가볍게 글쓰기 연습이나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서 '나는 성실한 작가'라는 셀프 타이틀을 내게 주기 시작하면서 글을 매일 쓸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작가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싶은 나의 셀프 이미지, 나의 타이틀, 나의 정체성을 나 스스로 부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엔 진짜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는다.
이 말이 조금 어려우신 분들을 위해 '비상식적 성공법칙'에 나와 있는 본문에서 예를 들자면, 채소를 파는 사업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스스로를 '채소 파는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부여했다. 그러다 보니 매출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절 식품 제공을 통해 가족의 유대와 건강을 촉진하는 슈퍼 프로모터이자 마케터'라고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단순히 채소를 파는 것이 아닌 가족 간의 유대,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족과 자신의 건강을 중요시 여기는 부유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채소를 사기 시작하고, 상품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실제로 내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나 또한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겠지만, 이렇게나마 경험해 볼 수 있으니 내가 원하는 나의 셀프 이미지를 나에게 계속 부여하면서 살아갈 거다. 나의 그릇은 내가 만들 거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고 싶으니까.
나의 그릇은 내가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