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책임진다는 것
난 만으로 26살, 올해 8월 27일이 되면 만으로 27살이다. 아직까지 한국 나이로는 28살. 정신은 아직도 10대 후반 같은데. 20대 후반이 되니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는 걸 보면 나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다.
캐나다에 살고 있어 항상 부모님이 못해줘서 미안하고 아쉽다고 하지만, 나는 이번 연도부터 용돈을 받지 않기로 했다. 아르바이트지만 그래도 한국에 있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친구들만큼은 번다. 물론 턱도 없이 높은 물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정도로 부족하지만, 풍족하진 않아도 살아갈 순 있다.
아빠는 그런 내게 미안해한다. 이해한다. 타지에 사는 자식새끼 뭐 하나라도 더 입에 넣어주고 싶고, 돈 한 푼 쥐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이랬으니까. 하지만 높아진 금리에 이자를 내기 바쁜 아빠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이젠 진짜 독립하고 싶기도 하고.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한 발, 두 발, 내 다리로 서보려고 하니 그동안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한다. 대학생일 때 쉽게 그만둘 수 있었던 아르바이트와는 달리, 지금은 다른 일을 찾기 전까지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짜증 나는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그냥 관둬버리고 말지'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은 성질 머리를 참고 살고 있다. 대신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조금 더 지혜로운 방법일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과 동시에 아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아내고 인고의 시간으로 버텼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다. 아빠라고 왜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겠는가. 양쪽 어깨에 두 명씩이고, 지고 살아야 하니 때려치울 수 없었을 거다. 그래서 우리 아빠가 그렇게 화가 많은가 싶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고, 또 이 일이라면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나의 상사 A 때문에 관두겠다는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 고작 5개월 정도 돈을 받고 일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책임질 일들이 무서워진다.
일에서 책임져야 할 일들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고, 또 내 삶에서 나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혀올 때가 많다. 어른이 되면 다 멋지게 살아가는 줄 알았더니, 뭐 이렇게 책임질 일이 많은 건지. 이래서 강아지는 어떻게 키우고 애는 어떻게 키우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어른들 모두가 다 이렇게 어른이지 않은 것 같은 마음으로 살다 보니 애도 키우고 강아지도 키우게 된 걸까? 아니면 다들 진짜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내 인생을 책임진다는 것이 이렇게 묵직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어딘가에 꽉 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아진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지만 책임져야 할 일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27살의 나는 조금 더 멋질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