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가 아프다
안검연축.
이모가 얼마 전 진단받은 병명이다. 연말부터 눈이 잘 안 떠진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동네 안과에 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대학 병원을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4월이 된 지금 안검연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우리 엄마와 이모는 7살 차이가 난다. 외할머니를 13살이란 나이에 보내고 난 우리 엄마는 이모를 줄곧 엄마처럼 생각했고, 자매 둘은 그렇게 끈끈하게 삶을 살아왔다.
같은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지만, 운전을 못하는 우리 엄마와 이모는 서로 전철을 타고 다니며 만난다. 우리 아빠가 아직도 조금 불편한 이모를 위해서 엄마는 이모를 보러 전철을 타고 간다.
이모부의 잘못된 선택으로 집안의 돈을 다 날려먹은 후, 이모의 고생은 시작되었다.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오고, 꽤 유복하게 컸던 이모는 억척같이 살아가야만 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갓난쟁이들을 돌보는 '도우미 아줌마'로 일을 했었다. 일하는 게 행복하고 아기들을 보면 행복하다는 우리 이모에게 안검연축이라는 병은 너무 잔인하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 방법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니 그저 답답할 노릇이다.
이번 달 60살 생일을 맞아 언니와 대만 여행을 떠나는 엄마에게 많이 비싸지 않은 가방을 선물했다. 공교롭게도 그 가방이 도착한 어제, 이모는 이모부와 함께 외할아버지 산소에서 찍은 사진을 엄마에게 보냈고, 눈을 제대로 뜨고 있지 못하는 이모를 보면서 엄마가 많이 울었다고 했다. 엄마가 무너지지 않으면 좋겠다. 여기서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이모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다. 그런 이모가 엄마는 짠하고, 고생만 한 것 같은 엄마 같은 언니가 이제 아프다고 하니,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저 건강할 줄만 알았던 이모였는데, 이모의 몸이 더 이상 버티질 못하는 듯하다.
엄마가 무너지는 걸 보는 건, 내가 무너지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
엄마를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지, 적어도 죽는 병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해야 하나?
어쩌면 시력을 잃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앞은 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친구한테 하는 위로만큼 엄마한테 못해주는 게 미안하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