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한 행복? 행복한 울적?
자발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님에도 억울함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이상하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것 또한 또 다른 토론토의 겨울이 주는 선물이자 핑계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이런 미친 상사를 만난 것보다 백수인 편이 낫겠다고-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그게 나의 위로 방식이었는지, 혹은 나를 위한 방어 본능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그렇게 나의 마지막 날, 나의 첫 회사에서 끝을 냈다.
최선을 다해 우리(사실은 본인을 위한 것이었겠지만)가 가져갈 수 있는 물품들을 가져갈 수 있게 나의 상사는 협상을 했고, 내가 쓰던 엘지 모니터 울트라 파인 24인치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제 눈 아프게 노트북 화면을 보지 않아도 24인치나 되는 큰 모니터가 내 눈을 덜 침침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울적한 행복을 느꼈다.
카르마를 믿는다는 나의 상사는, 정리해고가 자신의 카르마였다고 믿을까? 아니면 그녀를 정리해고한 사장을 저주할까? 나는 카르마를 믿지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찢어 죽일 만큼 싫은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럼 그런 카르마는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과거의 어떤 잘못을 저질렀길래 정리해고를 맞이했나, 하는 이상한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집중하자, 집중해. 면접을 앞두고 있기에 조금 더 집중해서 면접 준비를 해야지, 생각하고는 네이버 블로그를 어떻게 꾸며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내가 우스웠다. 난 면접 준비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떤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준비를 해야 하는 거지? 그러면서 긴장하는 내가 웃기다.
이제 나의 상사를 다시 만나지 않아도 - 사실 그녀는 나와 연락하며 지내고 싶어 하는 걸 안다 - 된다는 생각에 행복했고, 다시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에 이런 기회가 어쩌면 내가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좋은 일을 했길래 카르마가 날 이렇게 이끌어주나?
울적한데 행복하고 행복한데 울적하다. 우리는 이런 감정을 무어라고 표현하나?
잘 될 것만 같은 희망찬 미래가 기다려지다가도 당장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막막하다가도, 또 이게 기회이겠다 싶은 행복감이 뒤엉켜 그냥 감정을 느끼지 않기로 하고 스위치를 껐다.
느끼지 않을 수 없겠지, 감정이 있어야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믿는데, 나는 오늘 왜 아무런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은지. 체력이 달리나, 몸보신을 해야 하나, 하고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인드 맵이 된다. 어릴 때 이렇게 공부해서 최상위권은 안되었던 거겠지, 와 같이 이상한 결론을 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