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었던 모든 순간이 좋아지는 마법
부정적인걸 먼저 인지한다는 인간들. 죽음이 아니고서야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일 텐데. 어쩌면 죽음 또한 지구에서의 마지막일 뿐, 다른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르는데 왜 우리는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운에 이다지도 마음이 몽글해지는지. 매일 아침 일어나기 싫어 조금이라도 더 침대에 있고 싶어 하던 그 순간이, 모르는 게 생길 때마다 영어로 질문해야 하는 게 싫어 미루던 그 순간이, 거래처에서 온 메일을 못 본 척 실눈으로 지나치던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단어로 예쁘게 포장된다. 그때는 이랬는데, 이때는 이랬는데, 하면서.
나한테 못되게 굴던 상사년(?)을 죽어라 씹으면서도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운으로 그녀에게는 어느새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당연하게 사용하던 어도비 클라우드, 온갖 프로그램 구독, 내가 쓰던 노트북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삐거덕거리던 낡은 건물의 오피스는 뉴욕의 멋들어진 빈티지한 건물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오고, 내가 여기에 다시는 오지 못하겠지,라는 마음이 들면서 주어졌던 모든 것이 감사하게만 느껴진다.
이건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운일지, 아니면 인간의 못된 심보인지.
야, 가지고 있던 걸 빼앗아가니 그제야 소중함을 느끼는 게 못된 거 아니면 멍청한거 아니야?
인간의 고약한 심보, 이기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애써 무시한 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오피스를 눈에 한 번 더 담는다. 그런 내가 가소롭지만 오늘은 감성적이어도 눈 감고 넘어가주기로 한다. 하루쯤은 이래도 되잖아? 그 와중에 가져갈 수 있는 샘플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내가 혐오스럽다. 혐오라는 감정이 들자마자- 정리해고를 당했는데, 이 정도 생각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라며 곧장 나를 두둔한다.
아씨 근데 내가 쓰던 맥북 에어 진짜 가지고 오고 싶었는데 놓고 가라는 인사팀이 밉다. 정리해고 수당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맥북 정도는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괜찮아, 내가 욕심이 많은 게 아니라 마지막이니까 아쉬워서 하는 소리야. 난 괜찮은 사람이잖아.
역시, 인간은 고약해 마지막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