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는 모르게 해, 나의 정리해고

막막하다가 웃기다가 또 막막한 하루

by Sean

막막하다 막막해. 정리해고 소식을 듣고 나서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곧장 전화해 나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지러지게 웃었다. 웃기잖아, 론칭을 바로 앞두고 누가 브랜드를 접어? 지난 3년간 이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서 쓴 돈이 한화로 20억이 훌쩍 넘어가는데, 6억이나 되는 돈을 다 물어주면서 브랜드를 접는다고? 그럼 창고에 있는 남은 물건들은? 그 많은 옷들은 다 어떡해. 30억 가까이 되는 돈이 우습나, 어떻게 언질하나 안 주고 바로 그렇게 통보를 해버릴 수가. 그래도 언니, 엄마랑 아빠한테는 말하지마. 걱정거리 안겨주기 싫으니까. 여기선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해볼게.


대충 그렇게 떠들면서 언니한테 신신당부했다(우리 언니는 입이 정말 무거워서 우리 둘의 비밀이 많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그래서 우리 엄마 아빠한테는 나는 타지에서도 뭐든지 알아서 척척 잘 해내는 든든하고 야무진 둘째 딸이다. 아직까지는.


이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알바도 연락이 안 올 수 있지? 싶다가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예를 들면 블로그나 뭐 유튜브 같은)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낙관주의자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긍정적인 사람이 된 느낌이다. 그래도 엄마 아빠가 알기 전에 취업이든 돈벌이든 해내고 싶은데 머리가 아프다.


막막하다, 그러다가도 어쩌면 내게 위기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희망 가득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다가 복권을 사보기도 하고, 또 어떤 행운이 벌어질지 모르니 온라인에 나의 발자취를 계속 남긴다. 아 진짜 욕은 안 하고 싶은데 혼자 있으면 저절로 욕이 새어 나온다. 이 상황이 너무 웃기고 어이없고 그러다가 또 백수가 나쁘지만은 않아서 좋다가도, 또 막막해서 욕이 나와 씨발.


아, 어른되기 쉽지 않네. 아빠가 우리를 어떻게 키워냈는지 진짜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꿈이 가득했던 어린 나를 보면서 얼마나 순진하다고 생각했을까 우리 아빠는. 그러다가 또 아빠도 꿈 많은 청년이었을 텐데, 돈 때문에 여러 번 무너졌을 어린 아빠를 생각하니 또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


아, 엄마 아빠 내 잘못은 아닌데 내가 너무 미안해. 27년 인생 살면서 내 첫 회사였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버렸네. 웃으면서 넘기고 싶었고 그럴 줄 알았는데 오늘은 나의 삶의 무게가 조금 버겁게 느껴지네. 그래도 엄마랑 아빠라는 든든한 이름이 오늘의 나를 또 살게 해. 6개월 뒤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웃어넘기면서 이야기할 날이 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하루를 또 살아내야지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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