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새 책방 둥지의 문장들
나는 구독형 인간이다.
주로 음악과 영화, 글과 관계를 구독한다. 기다리는 시즌제 드라마의 시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좋아하는 가수와 작가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팬으로서 보내는 최소한의 응원으로, 때때로는 정의감으로 세상에서 잊히면 안 되는 것들이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 구독을 한다.
생각해 보면 구독 서비스라는 것이 생기기도 전부터 나는 구독을 했다. 이름이 좀 다르긴 하지만 정해진 금액을 필요한 가치를 위해 지불한다는 것이 같다.
정기후원. 성인이 돼서 내가 버는 월급이 생기고 나서는 정기 후원을 했었다. 내가 처음 정기 후원을 했던 단체는 세이브 더 칠드런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대뜸 나에게 "너 염소가 한 마리에 얼마인지 알아?"라는 질문을 했다. "염소? 너 염소 키워?"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쓴다더니 귀농을 하기로 한 건가.
친구는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염소 한 마리 보내면 그 염소를 키워 우유를 먹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염소 한 마리를 보내기 위해 내가 하루에 커피를 한 잔만 줄이면 된다는 다단계 같은 멘트로 이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친구의 그럴싸한 염소 라임은 옥상달빛이 노래 가사로 사용할 정도로 유명한 세이브 더 칠드런의 캠페인이었다.
어쨌든 당시 섹스 앤 더 시티의 광팬답게 하루 용돈 대부분을 스타벅스 커피를 사 먹는 데 쓰던 허영심 넘치던 나에게 친구의 그 커피 한잔만 줄이면 아프리카 어린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어라는 문장은 콕 박히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한 어린이 돕기 후원금은 세이브 더 칠드런과 유니세프, 국경 없는 의사회를 지나 북한 어린이 돕기까지 이어졌고 20대 중반에 시작했던 후원을 결혼하고 휴직 전까지 유지했다.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가끔 카드비로 통장이 빵구나거나 학원 월세가 빠듯해서 친한 오래비들에게 급전을 빌려 썼을 때는 몇 번이고 후원 중단을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쩐지 그 후원을 멈추는 행위가 내가 세상에 하고 있는 최소한의 선행을 멈추는 느낌이 들어서 주저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런 정기 후원을 멈추게 된 것은 아이를 낳고 내가 버는 돈이 없어졌던 2016년이었다. 월급이 많지 않던 남편에게 받은 생활비로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다니는 일도 빠듯했던 시기였다. 남편이 지나가며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하루에 쓰는 돈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한 말이 가슴에 남아 일부러 밥은 안 먹고 커피만 마시던 우울한 날들이었다. 커피 마실 돈도 내 맘대로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다니.
그리고 그즈음 나는 정기 후원을 중단했다. 정기 후원을 중단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결제 해지를 하면 그만인 보통의 구독 서비스와 다르게 후원을 중단하면 해당 단체에서 전화가 온다.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해 온 후원을 중단하는 이유와 앞으로 자신들의 단체에게 바라는 점을 묻고 그간의 감사함을 표시하기 위한 그 형식적인 전화 통화에 나는 지금 커피 한 잔 사 먹을 돈이 없어 후원을 중단하노라는 초라함을 숨기기 위해 온갖 있어 보이는 말로 포장을 하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후원을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물론 지금은 그 날들보다는 형편이 나아졌다. 나는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고 많지는 않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고 생활비를 보탤 수 있을 만큼은 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정기 후원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대신 정기 후원의 자리에 정기 구독이라고 하는 자본주의의 편리함이 자리를 잡았다.
나를 더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 정기 구독이라면 세상을 풍성하게 하는 일은 정기 후원이다. 여유가 없어도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단지 내가 그런 사람이 아직 되지 못한 것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서비스들의 목록을 주욱 적어 놓고 이것을 빼고 이것은 넣고 고민하다가 생각했다. 이것을 빼고 내면 다시 정기 후원을 넣어봐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