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알

보이는 나를 믿지 마세요

악어새 책방 둥지의 문장들

by 효진씨

'이불킥'

이 단어를 처음 만든 천재는 누구인가? 이불속에서 발차기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생각에 공백이 생길 때면 훅 하고 떠올라 얼굴이 빨개지는 일들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그런 일을 흑역사라고 부른다.


태생이 나대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흑역사가 생긴다. 하지만 그것을 숨기고 싶은 비밀이라기 보단 깔깔거리는 무용담쯤으로 여긴다. 그래도 역시 어떤 일들은 아드님이 아실까 두려울 정도로 화끈거린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다. 가시나무였던가.


의상에서만 TPO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격에도 TPO가 있다. 모임에 맞는 나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어떤 게 진짜 나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어떨 때는 스위치 버튼을 잘못 켜서 줌바를 하고 있는 나와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헷갈리기도 하고 욕쟁이 동창모임과 성당 자모회모임의 버튼이 잘못 켜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른 나를 숨기기 위해 얼굴에 열을 올리며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떤 공간에서든 어울리고 싶어 애를 쓰는 초라한 내가 있다. 사랑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린아이가 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 착하게 굴어야 했던 어린 시절과 칭찬받기 위해 공부를 하고 상을 받기 위해 그림이나 글을 베끼던 내가 있다.


피로감이 몰려들 때 나는 머리를 감는다. 아주 뜨겁거나 차가운 물로 좋아하는 샴푸를 잔뜩 짜서 머리를 감는다. 아니 머리를 빨아버린다. 그리고 강한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고 얼음을 잔뜩 넣은 진한 커피를 마신다. 언제까지 제대로 버튼을 켜는 총명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래비는 나에게 인생을 참 피곤하게 산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 애쓰지 말고 나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했다. 스스로에게 충만하게 사랑을 받으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갈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오래비는 스물 후반에도 알고 있던 사실을 나는 마흔넷이나 되어도 모르겠다.


사랑받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의 40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보며 쿨하게 "괜찮아. 수학이 인생은 아니야."라고 등을 두드려주고 수학 문제집을 주문한다. 2년째 휴직을 하고 재 취업의 낌새가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 "남자만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야" 라며 페미니스트인 척하다가도 앞동 사는 흰둥이에게 남편의 욕을 쏟아낸다. 점점 기억이 출구를 찾지 못해 대화하기가 힘든 엄마를 걱정하면서도 친정에 가는 일을 줄인다. 착한 딸이고 싶지만 멀리 이민을 가고 싶다.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 사실 모르겠다. 그 모든 게 나 일수도 있도 또 그 모든 게 내가 아닐 수도 있다. 나를 아는 것. 정체를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다가 서있는 자리에 맞춰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이 생각났다. 우리는 카멜레온이 무슨 색인지 알 수 있을까? 그것은 그냥 생존을 위한 진화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나를 포장하고 숨기기 위해 내가 애썼던 그 모든 위선의 행동들을 생존의 진화라고 한다면 나는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흑역사는 진화의 배설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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