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알

댄서의 순정

악어새 책방 둥지의 문장들

by 효진씨

나는 압력밥솥 같은 사람이다. 그것도 자동으로 김 빠짐 장치가 되어서 친절한 목소리로 안내방송이 나오는 최신형 압력밥솥이 아니라 직관적인 종소리로 위기감을 조성한 뒤 가스레인지의 불을 줄여서 뜸을 들여야 하는 구식 밥솥.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했던 2019년 여름 우리 동네에 줌바 댄스 스튜디오가 생겼다. 보통의 줌바 댄스 스튜디오가 지하에 있는 것과 달리 7층 통유리 창에 붙여지던 간판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창 너머로 넘쳐나던 반짝이는 조명을 본 날. 나는 결심했다. 줌바댄서가 되어야겠다.


월수금 8시 40분은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위해 부지런히 할 일을 마친다. 남편과 아이가 먹을 저녁을 준비하고 그들이 서둘러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식탁 근처를 서성인다. 그리고 그들이 식사를 마치면 서둘러 설거지를 해서 쌓아두고 레깅스에 티셔츠를 입고 물병을 챙겨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달려서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바로 운동화를 신는다. 내 운동화는 형광 주황색이다. SNS 속 줌바 댄서들은 죄다 형광색 옷을 입고 반쯤 벗고 있다. 언젠가 나도 그렇게 풀착장을 하고 스튜디오에서 운동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최대한 날씬해 보이는 검은색 레깅스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하지만 검은색 티셔츠를 몸에 꼼 맞도록 한쪽을 끌어당겨 매듭을 묶는 것으로 멋을 더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엄마를 따라 처음 갔던 에어로빅 장에서 맨 앞 줄 늘씬한 몸매에 어깨 한쪽 나비 문신을 했던 나비 아줌마를 동경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 나비 아줌마보다도 많은 나이를 살고 있는 나는 나비 문신은 없지만 나비 아줌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생님의 바로 뒷자리. 맨 앞 줄 센터가 내 자리다.


맨 앞 줄 센터 자리의 의무는 이렇다. 선생님의 구령에 호응을 하며 맞구령을 붙이고 소리를 지르는 자리. 비교적 오랜 기간 스튜디오에 나와 안무를 숙지하고 있으면서 프리스타일로 까불 수 있는 자리. 그렇게 현란하게 움직이는 조명 아래서 소리를 지르고 몸을 움직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몸에서 김이 난다. 모락모락 솓아오르는 김과 함께 하루 종일 응축되어 있던 모든 번뇌가 빠져나가 다시 새로운 내가 되는 거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냉장고 속에서 아몬드 유를 꺼내 마시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너그럽고 친절한 새 사람이 된다. 새 사람이 된 나는 내일 어떤 일이 생겨도 상관없다. 마치 공장에서 오늘 출고된 신제품처럼 100%로 충전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일도 다 해낼 수 있다.


경지에 오른 도인들이나 수도자들은 매일 밤 오늘 죽는 것처럼 하루를 마감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매주 월수금 저녁 8시 40분, 나는 남아있는 오늘의 나를 활활 불붙여 태워버리고 새로 태어난다. 어느 날인가 신나는 음악 속에서 정신을 잃은 것처럼 뛰고 있는 누군가를 본다면 박수를 보내주자. 그도 나처럼 자신을 태우고 새로나는 신성한 의식 한가운데 서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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