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알

얼굴은 시리지만 엉덩이는 뜨거워!

악어새 책방 둥지의 문장들

by 효진씨

4월의 마지막 비가 내리고 나면 바람에서 차가운 기운이 사라진다. 목에 감았던 스카프를 풀고 적극적으로 바람을 즐기는 시간이 찾아오는 거다. 나는 바람을 맞는 일을 좋아한다. 코가 시리고 볼이 빨개지는 겨울바람도, 우산을 소용없게 만드는 비바람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사랑하는 바람은 5월의 바람이다. 습기와 열기를 머금기 전에 불어오는 산뜻하고 시원한 바람.


상하이는 덥고 습한 도시였다. 추위가 물러가고 아주 잠깐의 봄이 지나면 바로 비가 많이 내리고 목욕탕처럼 더워지는 도시에서 에어컨은 필수 가전제품이다. 하지만 에어컨이 만들어 내는 바람에는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어쩐지 기계가 만들어 내는 바람에서는 쇠냄새가 나는 것 같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기계바람을 오래 맞으면 머리가 아파지는 것이다.


여름이면 에어컨을 틀고 두통약을 먹는 것이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따라 에어컨으로 한껏 차가워진 방 안의 공기가 선뜩하게 느껴져 공기를 바꾸고 싶었던 마음에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유레카! 창을 통해 들어온 뜨거운 바람이 에어컨을 만나면서 시원한 바람으로 바뀌었다. 순간적으로 마치 창에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종종 에어컨을 틀고 창문을 연 채로 한 참을 그 앞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곤 했다. 지구를 오염시키는 천재 과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전기세는 회사에 청구하면 그만이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여름마다 에어컨과 여름 바람이 만들어내는 인공 자연풍을 찾아 늦은 밤마다 차를 끌고 동부간선도로를 달렸다.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나 한적한 동부 간선 도로 위 주황색 불빛 속을 심야 라디오의 멜랑꼴리 한 음악을 들으며 달렸다. 4개의 창을 모두 활짝 개방한 채로 질주하던 2008년식 아반떼는 나에게 페라리 오픈카였다.


환경오염과 바꾸었던 한여름밤 취미 생활은 결혼을 하며 끝이 났다. 자동차 공회전과 전력 낭비를 혐오하는 남편은 절대로 에어컨을 튼 채로 문을 여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한여름 에어컨을 튼 남편의 차에서 엉뜨를 틀어 허리와 엉덩이를 데우는 것으로 소심한 반항을 한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차가운 공기 속에 홀로 뜨거운 엉덩이는 에어컨을 틀고 문을 여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완전히 다른 두 개가 만나서 주는 이상한 즐거움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드라마처럼 매회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고 또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야 평화로운 하루 중에 뜨거운 엉덩이와 에어컨처럼 이상한 조합이라도 있는 편이 즐겁지 않을까? 슬픈 데 웃기거나 기괴한데 아름답거나 무서운 데 친절한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하루도 그랬으면 좋겠다. 바쁜 데 여유롭고 힘든데 신나는 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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