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새 책방 둥지의 문장들
프랑스 엄마처럼 아이를 키울 수는 없었다.
쳇지피티가 답을 해주지 않았던 시절, 녹색 창을 통해 검색되어 나온 타인의 경험을 신뢰하지 않던 시절, 책은 나에게 유일한 비책이었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선은 그것과 관련된 지식을 찾아 도서관을 돌며 자료를 모으고 마음의 평안이 찾아올 때까지 탐구하는 사람이었다.
결혼과 임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아이이면서 유일한 아이. 잘 키워보고 싶다는 포부만큼 나는 더 열심히 자료를 모아 읽었다. 육아서를 읽으며 수유의 주기를 정하고 프랑스 엄마처럼 단호하게 교육하는, 나와 아이의 삶을 분리시키는 세련된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다짐과는 무관하게 흘러갔다. 아이는 책 속의 예시와는 다른 시간에 배가 고프다고 빽빽 울었고 안아주지 않기에는 아파트는 민원이 속출하는 주거 형태였으며, 수면 교육을 위해 아이를 방에 혼자 재우기에는 너무 예뻤다. 그렇게 나는 100일도 안 돼서 프랑스 엄마를 포기하고 한국 엄마라는 것을 인정하고 말았다.
아이는 늘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자연을 경험시켜 주고 싶었지만 나를 닮아 벌레를 싫어했고, 다양한 촉감을 경험시켜 주기에는 지나치게 깔끔을 떨었다. 거실 한가득 그림책이 있지만 도라에몽을 좋아했고 인디밴드를 좋아하는 연남동 죽순이의 아들은 미스터트롯과 소방차를 좋아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보다 먼저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이 제시하는 시간표를 확인하며 내 아이를 키우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열두 살 사춘기에 들어가며 생기게 된다는 성적 호기심과 두려운 질문이 우리 집에는 조금 빠른 열한 살 여름에 찾아왔다. 사실 공부방에서 아이들에게 종종 그런 질문을 받기도 하고 나름 질문받을 때를 대비해 대사도 마련해 놓았었다. 왜 자신은 있는 것이 엄마는 없으며 아빠와 자신의 것은 다르게 생겼냐는 질문에도 나는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던 예상 답안이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답을 해줄 수 있었다. 준비된 엄마의 여유란 이런 거군.
열두 살, 아이가 임신 과정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준비된 엄마답게 그 과정을 가감 없이 정확한 단어를 사용해 설명해 주겠다고 준비했었다. 그런데 열한 살은 너무 빠른 거 아닌가? 그것도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을 보다가는 아니지 않은 가. 훅 들어온 질문에 나는 무료버전 쳇지피티처럼 버벅 거렸다.
"엄마, 전에 아기는 아빠 몸속의 정자와 엄마 몸속의 난자가 만나서 생기는 거라고 하셨죠? 그럼 뽀뽀를 하면 만나요? 아빠의 입에서 나온 정자가 엄마의 입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응? 입? 입으로 들어가냐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반짝이는 녀석의 질문에 나는 그것은 절대 아니라고 정자와 난자는 절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정자는 생식기에서 나오는 거라는 저장된 대답을 했다. 아뿔싸, 그런데 아이는 나의 대답을 듣자 눈이 더 동그래지고 말았다.
"아빠의 생식기에서 나온 정자가 엄마의 입으로 들어간다고요?"
결국 나는 아빠의 생식기에서 나온 정자는 엄마의 생식기로 들어간다는 책에 나올 법한 설명만 반복하다 이 주제는 4학년 1학기에는 다루기 적합한 주제가 아니니까 2학기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비유하자면 "이건 시험에 안 나오니까 몰라도 돼." 같은 대답이었다.
기억력이 좋은 아이는 4학년 2학기가 되면 다시 질문을 해올 것이다. 어쩌면 적극적으로 검색을 할지도 모른다. 아이의 검색보다는 나의 대답이 빨라야 할 텐데 어떻게 대답해주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열한 살 남자 어린이가 내 대답을 자랑하듯 친구들에게 떠벌리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없다. 내가 본 책 속 어린이는 저런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역시 육아에는 책이 소용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