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알

선생님과 선생. 그 어딘가

악어새 책방 둥지의 문장들

by 효진씨

선생님 알레르기.

만약에 관계의 예민함을 검사하는 알레르기 검사가 있다면 나는 굉장히 높은 민감성을 지닌 고 위험군 진단을 받을 거다. 그리고 굉장히 독한 항히스타민 처방이 필요할 거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런 검사나 처방은 존재하지 않고 심지어 나는 사교육이긴 하지만 선생님이다.


정식으로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경험했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나는 드라마나 뉴스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나쁜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들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아까운 그저 나 보다 먼저 태어나 오랜 시간을 산 '선생'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학부모 상담 기간에 부모에게 촌지를 받았다. 김영란 법이 생겨 지금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학년이 시작하면 선생님은 수업 첫 시간에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에게 손을 들 게 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 부모가 대졸인지 고졸인지, 회사에 다니는지, 사업을 하는지 묻곤 했다. 철없던 시절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자랑스레 아빠가 다니는 은행이 어디이고 우리 아빠가 얼마나 좋은 회사에 다니는 지를 자랑처럼 말하곤 했었다.


젖가슴이 도드라지기 시작하고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시작한 사춘기 즈음부터는 그렇게 가슴 앞주머니에 명찰을 달아주는 나이 든 남자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학생 상담시간이면 가까이 다가앉으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아빠같이 생각하라며 진학 상담을 하던 담임 선생님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동창들 사이에서 그 선생님이 결국 교생에게도 그런 행동을 하다가 부인까지 불려 와 사과를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회의적인 목소리로 "선생들이 다 그렇지. "라고 말했다.


그래서 교대나 사대에 진학하는 게 어떠냐는 부모님의 권유에도 나는 최대한 학교와 먼 진로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알 수 없듯이 나는 고3 수능이 끝나면서부터 과외를 하기 시작해서 회사에 다녔던 2년 남짓을 제외하고는 줄곧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아이들을 만나 가르치게 된 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선생님이라고 하는 직업에 대한 불신을 치유하고 선생님들에게 세상은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반항했던 일을 사죄하는 미션이 주어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엄청난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으로 시간을 지나가며 나는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직업인으로서의 선생님들을 이해해 가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박봉으로 과도한 열정을 요구당하는지 그래서 남들 다 받는 촌지를 받지 않고서는 자신의 가정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것. 학생을 가르치는 것 외에 수없이 많은 행정업무에 시달리고 진상 학부모에게 최대한의 인내와 교양으로 응대했어야 했는지 등이다.


이런 이해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먼 기억 속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중학교 도덕 선생님의 존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나에게 윤도현 밴드의 노래를 알려주었고 하루에 한 끼도 먹기 어려운 난민들의 존재를 알려주었던 사람. 그리고 그 난민들 중에서도 가장 소외되는 북한 동포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모금통을 들고 학교를 돌며 100, 500원씩 모아 북한 동포 돕기를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렇게 하나씩 기억이 살아나더니 어쩌면 내 기억 속에 좋은 선생님들은 스쳐지나고 나쁜 선생님들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의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았다고 서운해하지도 않았을, 그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을 수많은 선생님이 있었다. 어쩌면 존경할만한 선생님은 없을지 모르다. 그리고 대부분의 진짜 선생님은 조용히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런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길에서 만난 어린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더 좋은 것처럼 안심하면서 기억되지 않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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