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새 책방 둥지의 문장들
나에게는 단골 가게가 있다.
단골이라는 단어가 마치 머나먼 과거의 말처럼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역시나 ‘단골’이라는 단어 말고는 딱히 그 관계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12월생 아이가 3살이 되던 해에 이사 왔던 우리 아파트는 과수원을 아파트 단지로 만든 곳이었다. 그래서 상가에 제일 처음 생긴 소아과와 김밥 집은 우리의 첫 병원, 첫 김밥집이 되었다. 집에서 작게 시작한 공부방이었지만 일하는 엄마에게 소아과와 김밥집의 존재는 육아 공동체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밤새 열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뛰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늘 정확한 시간에 문을 여는 병원이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고 오늘 저녁 아이와 퇴근한 남편을 뭘 먹여야 하는 고민이 생기거나 밥이고 뭐고 다 귀찮은 날에는 김밥을 포함한 메뉴의 종류가 스무 가지가 넘는 김밥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주에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김밥 집 메뉴를 포장해다 먹었다. 내 돈을 내고 내가 사러 가는데 우리 엄마, 아빠뻘 되는 사장님 부부가 ‘저 엄마 또 밥 사러 왔네’라고 생각할까 봐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일이 많았네요. 영인이가 열이 났어요.”라면서 밥을 하지 못하는 핑계를 만들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 또 그때마다 별로 친절하지도 않은 사장님 부부는 “애 키울 때는 다그래. 그래야 우리도 장사하지.”라면서 웃어 보이셨다. 그 말을 들으면 민망하면서도 든든한 마음이 들어서 나와 아이는 둘이서 김밥을 먹으며 “역시 김밥은 S김밥 사장님이 만드신 게 제일 맛있지.”라고 칭찬을 하곤 했다.
3살 꼬마였던 아이가 10살이 된 작년 여름, 아이는 헐레벌떡 집으로 들어와 “엄마, S김밥 이사 가나 봐요!!!”라는 비보를 전했다. 아이의 이야기는 이랬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목이 말라서 김밥 집에 물을 마시러 갔는데 사장님 부부가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그렇게 물 마시러 김밥 집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또 갔구나.) 큰일 났네. 나와 아이는 동시에 ‘그럼 우리 이제 밥은 어떻게 먹지?’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나는 저녁거리를 포장하기 위해 김밥 집에 가서 넌지시 사장님께 “이사 가신다면서요? 영인이가 엄청 걱정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전했고. 사장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다음 주에 이사를 가신다고 하시더니 바로 웃으며 "옆집으로"라고 말을 붙이셨다. 사정은 이랬다. 지금의 가게 주인이 월세를 너무 갑자기 올렸고 지금 장사 잘되는데 나갈 수 있겠어라는 태도가 맘에 안 드셔서 손해가 있더라도 오랫동안 비어있는 옆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다행이다. 멀리 가시는 게 아니라니. 사장님은 웃으면서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영인이 김밥은 계속 먹을 수 있어. "라고 말하셨다. 어린이집 소개 시간에 저는 우리 할머니 김밥을 제일 좋아한다며 S김밥 사장님을 소개했던 녀석이 어이없다며 깔깔거렸던 나도 사실은 김밥 집을 멀리 있는 친정엄마 대신 급할 때 반찬을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나 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처음으로 우동에서 나온 머리카락 한 올을 건져내며 “그냥 먹어. 사장님 머리카락이겠지.”라고 말하는 예민한 남편을 보면서 우리 가족에게 동네 김밥 집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