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알

아주심기

악어새 책방 둥지의 문장들

by 효진씨

김태리가 나왔던 리틀 포레스트에서 ‘아주심기’라는 단어를 알고 난 뒤로 나는 심심치 않게 이 단어를 사용하곤 했다.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5년 남짓을 제외하고는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결혼과 동시에 아는 것이라고는 호두과자 밖에 없던 천안으로 이사를 온 나에게 친구들은 종종 잘 적응하고 있는 지를 물어왔다. 나는 그때마다 멋있는 척 단어를 골라 ‘아주심기’ 전 단계라는 말을 하곤 했다. ‘아직 이곳에 ‘아주 심기’를 하지는 않았어.‘

그러던 내가 작년부터 공식적으로 천안 사람이 되었다.


자유시간만 생기면 서울에 가 놀 궁리를 하는 나의 선언에 친구들은 놀라움보다는 알고 있었다는 듯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알았어?”라는 내 질문에 대번 “성당에 나가잖아.”라 대답이 돌아왔다.

‘성당’

나는 나의 ‘아주 심기’의 상징은 중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성당이라니.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나는 동생과 같이 사용하는 방에서도 심지어 외삼촌과 외할머니와 함께 사용하는 방에서도 늘 나만의 공간을 가지려고 애를 썼다. 외삼촌의 책상 밑에 엄마의 보자기를 들고 와서 커튼을 만들고 , 장롱 속 이불을 다 끄집어내고 스탠드 전등을 끌고 들어가 책을 읽었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도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좋아하는 그림이나 연예인의 사진을 붙이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사는 것이 제법 나아졌던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은 내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필사적으로 막으면서 나만의 공간을 사수했다.


결혼을 하고 나만의 가정이 생기면 나는 그토록 오랜 시간 원했던 진정한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로망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혀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낸 두 사람의 취향이 경제적 제약 속에서 뒤섞여 있는 공간. 내가 꿈꾸는 공간은 지나치게 비싼 예산과 지나치게 위험한 물건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나 보다.

그렇게 10년. 나는 다시 책상 밑에 보자기를 치던 그 시기처럼 나만의 공간을 갖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부엌에서 방구석으로 그리고 문간방으로. 늘어나지 않는 수입만큼이나 지루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180만 원짜리 중문 비용을 결제하고 서야 나는 비로소 책과 내 취향의 그림 포스터를 붙인 넓은 6인 책상이 있는 내 집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공간이 나의 ‘아주심기’의 상징이 아니라고?


아주 산다는 것이 뭘까? 나는 다시 생각해야 했다. 떠나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 공간을 갖는 것이 아주 사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아주 사는 것일까? 내가 아주 살았던 그곳에는 집 말고 무엇이 있었을까?


내 방이 생기고 우리 집이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기 시작할 무렵 나는 성당 청년회에 들어갔다. 교회처럼 옮기지 않고 한 곳을 다니는 것과 달리 이사를 한 곳에 교적을 옮기고 가장 가까운 곳에 가야 하는 성당의 시스템은 우리 집처럼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장벽 같은 것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교류해 온 사람들 속에 들어온 곧 떠날 것 같은 사람에 대한 벽이었다. 그러니 내가 청년회에 들어갔다는 것은 적어도 이곳에서 10년 이상을 살 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아주 사는 곳이 집이라면.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내가 먹고 자고 생활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곳. 그래서 떠난 뒤에는 그리워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이 집이라면 나는 이제야 10년 만에 집을 갖게 되었다. 아쉬움 없이 떠나버리는 공간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은 공간. 문을 열고 들어가면 편안해지는 냄새가 나고 안도감을 느껴지는 공간. 그것은 취향이 담긴 물건이나 장식이 아니라 오래 살아갈 공간에 대한 믿음인 것 같다. 그러니 드디어 나는 내 집에 살 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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