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지키는 일상의 알_H의 질문
내 친구 흰둥이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났다.
얼굴이 하얗고 눈은 땡그랗게 커다랗고 입가에는 늘 웃음이 머무는 내 친구의 원래 이름은 민정이다.
하지만 나도 내 친구들도 민정이를 부를 때는 흰둥이라고 부른다.
민정이가 흰둥이가 된 사연은 그 당시 민정이가 제일 좋아하던 연예인이 신화 이민우였기 때문인데 팬들이 지어준 이민우의 별명이 짱구였고 우리는 민정이에게 짱구부인의 지위는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 민정이의 외모가 짱구와 늘 함께 다니는 흰둥이와 너무 닮아 있기도 했어서 담임 선생님도 민정이를 흰둥이라고 불렀었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민정이는 나에게 흰둥이다. 나는 흰둥이가 그려진 소품을 보면 내 친구 흰둥이가 떠오른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짜잔하고 선물로 내밀기도 한다.
흰둥이는 고등학교3학년 내내 내 짝꿍이었다. 대학을 가고 직장이 생기면서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흰둥이는 계속 내 친구 흰둥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산에 내려와 살게 되었을 때 흰둥이가 천안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에!! 너희가 언제까지 그렇게 붙어 살 거 갔냐고 떨어져 앉으라던 담임에게 거보란 듯이 붙어 살 기회가 왔다. 운전을 못하는 흰둥이지만 내가 운전을 잘하니 우리는 만나려고 하면 언제든지 지금까지 보다 더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런 흰둥이를 우연히 만난 곳은 아파트 사전 점검 날이었다. 결혼하고 처음 넣은 청약에 덜컥 당첨된 남편 때문에 새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나는 새 아파트는 좋지만 우리에게는 좀 무리처럼 느껴졌다. 아산에서 겨우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다시 천안으로 나오게 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런지 눈에 거슬리는 하자도 많았다. 그리고 빼곡하게 적은 하자 명단을 접수하고 나오는 길에 나는 배시시 웃는 흰둥이를 만났다.
"어? 너 뭐야?"
"나 여기 아파트 샀어."
"여기? 이 아파트?"
신혼집을 구하던 흰둥이는 남편에게 결혼 조건으로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항목을 넣었다고 했다. 흰둥이가 앞동에 살게 되다니. 운전을 할 필요도 없이 매일 만날 수 있는 곳에 살게 되다니.
나는 갑자기 무늬가 맞지 않는 벽지나 꽉 닫히지 않는 문 따위는 상관이 없어졌다.
그렇게 나는 내 친구 흰둥이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점심을 먹었다. 내가 집에서 학부모들 상담을 해야 할 때는 우리 집 어린이는 가방 가득 과자를 챙겨 흰둥이 이모집에 갔다. 냉동실에 넣어야 하는 택배가 오면 흰둥이가 우리 집 냉장고에 넣어 준다. 며칠 집을 비워야 할 때면 우리 집에 들어와 거북이 밥을 챙겨주는 것도 흰둥이다. 남편 스트레스, 시댁 스트레스, 그 외 모든 스트레스가 쌓여 폭발 직전에 이르면 흰둥이는 나를 불러내 아이스 라떼를 사준다.
"커피 사줄게"
"나 사이즈 업해도 돼?"
"응. 큰 거 먹어!"
"케이크도 시켜도 돼?"
"응, 시켜도 돼."
그럼 나는 내 작은 자동차에 흰둥이를 태우고 따로 갔던 좋은 카페에 함께 간다.
"여기 좋지? 보고 너랑 와야지 했어."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하는 녀석을 데리고 줌바도 간다. 쭈뼛거리는 흰둥이를 시끄럽고 조명이 반짝이는 공간에 넣어 두고 옆에서 웃기고 응원하고 하면서 같이 춤을 춘다.
헬스장으로 불러내 트레이너처럼 천천히 구령을 세면서 한 개 더, 한 개 더 하면 내 친구 흰둥이는 낑낑 거리며 운동을 한다.
어떤 날에는 그런 우리 모습이 너무 좋아서 가슴이 가득 행복해진다.
나는 계속 시끄럽고 유난스러운 몹시 즐겁고 몹시 바쁜 할머니가 될 거다. 그리고 내 친구는 그런 내 옆에서 웃으면서 나를 토닥였다 안아주었다 하는 고운 할머니가 될 거다. 그렇게 오래오래 나는 내 친구랑 같이 늙고 싶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되어도 일하고 싶은 내가 그동안 내 친구가 사주었던 커피를 매일 사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