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가족] 리뷰
겨울 저녁. 가난한 남자는 어린 소년과 함께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다.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손짓은 능숙하다. 하지만 그날 따라 돌아가는 길목에서 그들은 한 소녀를 만난다. 차가운 베란다에 홀로 앉아 있는 작은 생명. 따뜻한 집을 향해 뻗는 손길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작되는 『어느 가족』 은 시작부터 ‘도둑’과 ‘가족’이라는 이질적인 단어를 나란히 놓는다. 도입부는 사건이 아닌 정서로 시작한다. 시린 밤, 따뜻한 식탁, 익숙하게 나눠 먹는 라면, 그리고 말없이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눈빛. 고레에다는 처음부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일까?”
도쿄의 외곽. 허름한 주택가에 사는 오사무는 어린 소년 쇼타와 함께 생계를 위해 마트에서 도둑질을 한다. 어느 날, 추운 겨울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오사무와 쇼타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베란다에 홀로 앉아 있던 소녀는 몸에 멍이 가득하고, 얇은 옷을 입은 채 추위에 떨고 있다. 이들은 소녀를 집으로 데려와 밥을 먹이고,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 소녀는 가족의 일원이 된다.
이 가족은 법적으로 얽힌 관계가 아니다. 할머니는 연금을 나눠주며 식구들을 보살피고, 엄마 노부요는 세탁공장에서, 아내 아키는 접대업소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들의 삶은 가난하고 불안정하지만, 식탁 위에는 웃음이 있고, 서로의 체온이 있다.
하지만 히요리의 실종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들이 쌓아온 조용한 일상은 균열을 맞는다. 경찰 조사와 함께 그들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고, 감춰진 진실 앞에서 가족은 흩어지기 시작한다. 쇼타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관계가 무엇인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고백은 관객에게 묻는다.
"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들이 나눈 시간은 진짜 가족이었을까?"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등장인물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혈연이나 법적인 관계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 설정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가족이란 과연 무엇으로 성립하는가?
가족의 가장으로 보이는 오사무(릴리 프랭키)는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책임지는 인물이다. 그는 도둑질을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있고, 어린 쇼타를 그 일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단지 생존을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소년에게 생활의 방식을 전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사무의 아내로 불리는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세탁소에서 일하며 조용히 가정을 이끈다. 그녀는 아이 히요리를 처음 데려오는 데 반대하면서도, 아이의 상처를 발견한 순간 바로 포용한다. 말없이 밥을 해주고, 옷을 갈아입히며, 어느새 엄마처럼 행동하게 된다.
아키(마츠오카 마유)는 가족의 일원인 듯하지만 사실은 할머니의 옛 며느리의 딸. 접대업소에서 일하며 자신만의 외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집 안에서는 가장 밝은 에너지를 가진 인물이다. 가족 간의 미묘한 감정을 중재하고, 무심한 듯 따뜻한 태도로 균형을 유지한다. 가장 복잡한 인물은 할머니다. 그녀는 법적으로 연결된 가족은 아니지만, 과거에 맺은 관계를 이용해 연금을 받고, 그 수입으로 식구들을 보살핀다. 겉으로는 무심하지만, 이 가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용히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쇼타. 그는 오사무와 노부요의 ‘아들’로 보이지만, 사실은 버려진 아이를 데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족 속에서 형성된 관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다정한 말, 소소한 일상, 식탁에서의 눈빛은 그가 진짜 ‘아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히요리. 원가족에게 학대를 받던 아이는 말없이 이 집에 흘러들어와,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손을 잡고, 잠자리에 함께 눕는다. 그 변화는 명백하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가족’ 속에서 안정을 느끼는 모습은 뚜렷하다. 이렇게 구성된 ‘가족’은 제도와 조건이 아닌, 생활과 시간으로 형성된 공동체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보듬으며 살아간다.
이 영화가 묻는 건 단순하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가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의 핵심 무대는 도쿄 외곽의 오래되고 비좁은 단층주택이다. 이 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 영화에서 하나의 인물처럼 기능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공간을 통해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역설을 시각적으로 설계한다. 천장은 낮고, 방은 좁으며, 벽지는 군데군데 뜯겨 있다. 문 하나를 지나면 부엌이자 식당이자 거실이자 침실인 다목적 공간이 나타난다. 공간의 구조 자체가 서열과 사생활의 개념이 모호한 가족 구성을 드러낸다. 이 집은 통풍도 잘 안 되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영화의 정서와 맞닿는다.
이 집은 ‘편안한 공간’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공간이다. 영화는 이 집을 밀도 있게 관찰한다. 좁은 부엌에서 서로의 어깨가 닿고, 밥솥에서 김이 올라오며, 문턱에 걸터앉아 옷을 꿰매고, 팬을 돌리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생활의 리듬이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카메라는 자주 고정되어 있고, 인물들은 화면 안에 포개어 배치된다. 한 화면 안에 둘 이상의 인물이 들어와 있는 쇼트는 그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한 밀착이 이 ‘가족’에게는 때론 부담이지만, 동시에 유대의 기반이 된다.
반면, 외부 공간은 대조적으로 묘사된다. 도둑질을 하는 마트, 일터로 향하는 길, 히요리를 처음 발견한 베란다. 그 공간들은 모두 비정하고 구조화된 사회의 얼굴을 담고 있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각자 제 역할을 연기해야 하지만, 집에서는 그 연기를 벗어버릴 수 있다.
이 집은 결국, 제도에서 밀려난 이들이 만들어낸 임시 공동체의 증거다. 공식적인 울타리는 아니지만, 그 안에서는 누군가를 ‘엄마’라 부르고 ‘딸’이라 여기는 시간이 쌓인다. 결국 영화는 이 집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만든 공동체가 사회 속에서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공간은 이야기의 배경을 넘어서, 가족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비추는 거울로 작동한다.
영화의 후반부, 모든 진실이 드러난 후 경찰서에 불려 온 노부요는 좁은 취조실에 앉는다. 한쪽엔 형사가, 다른 한쪽엔 차가운 테이블과 노부요의 손. 이 장면은 영화 내내 조용하고 절제된 그녀의 감정이 처음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형사는 히요리를 데려온 이유를 묻는다. 노부요는 잠시 침묵하다가,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이 이야기한다.
“그 아이가... 그 집에 혼자 있었거든요.”
그 말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노부요가 자신의 행위를 이해하려 애쓰는 감정의 고백이다. 그녀는 엄마가 아니다. 법적으로도, 혈연으로도. 하지만 아이를 데려온 것도, 입을 씻겨주고 옷을 입힌 것도, 그저 ‘사랑’의 형태였다. 그 사랑이 사회적 기준에서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 그녀 역시 잘 알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노부요가 고개를 숙인 채 말하는 순간이다.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웠어요.”
이 대사는 관객의 심장을 정조준한다. 그녀가 진심으로 엄마가 되고자 했고, 그 ‘부르짖음’ 하나로 인간으로서 구원받았음을 보여준다. 안도 사쿠라는 이 장면에서 표정보다 목소리와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으로 감정을 연기한다. 말끝을 흐리거나 멈추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톤은 노부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안고 있었는지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 취조 장면은 단순한 법적 절차를 넘어서, 노부요라는 인물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자신의 선택을 해석하는 시간이다. 그녀는 ‘도둑질’도, ‘아이 유기’도 변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있었던 감정, 돌봄, 공감, 그리고 사랑은 분명히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가족'은 가족이라는 단어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갖는 의미를 다시 구성해 나간다. 법도, 혈연도 아닌 관계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나눈 시간들—그 안엔 누가 뭐라 해도 분명한 애정과 책임이 존재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영화에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단죄하지 않는다. 그는 질문만 남긴다. 그리고 관객이 그 질문 속에 머무르도록 만든다.
'가족'이라는 말은, 단지 제도로 묶인 집단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돌보고, 함께 살아내기로 한 선택일까? 영화 속 인물들은 어쩌면 잘못된 방식으로 서로를 감쌌지만, 그 마음 자체는 결코 가짜가 아니었다. 그들이 나눈 식사, 잠든 아이의 머리맡을 쓰다듬던 손길, “엄마”라는 짧은 호칭.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가능성의 순간들’이었다.
'어느 가족'은 그 가능성을 포착해 낸 영화다. 그리고 그 가능성 앞에서, 우리가 너무 쉽게 말하던 ‘진짜 가족’, ‘정상 가정’이라는 말이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별점: ★★★★☆ (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