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돼지 삼형제와...

by 문윤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가 보니 누군가가 서 있었다. 문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중절모를 쓴 신사가 한 명 서 있었다. 팔에는 털이 보였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난 그의 미소를 보았다. 늑대가 돌아왔다.


어느 날 꿈을 꾼 적이 있다. 홀로 살 때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갔을 때 문 앞에서 신사처럼 꾸민 늑대와 마주하는 꿈이었다. 그날 저녁 난 라디오헤드의 'A Wolf At the Door'를 반복해서 들었다. 무의식 깊은 곳에는 아직도 아기 돼지 삼형제가 살고 있었던 건지 모른다. 늑대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아기 돼지 삼형제의 모습은 너무도 귀여워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작가의 생각이 그랬을까. 이 이야기는 18세기에 서양에서 만들어진 동화다. 짚으로 만든 첫째 돼지의 집은 늑대의 입김에 날아가버리고, 나무로 만든 둘째 돼지의 집 역시 부서지고 무너지며, 하지만 셋째가 지은 벽돌집은 늑대의 입김에 날아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다. 늑대는 굴뚝을 통해 돼지 삼형제의 집으로 침입하려 하는데...

그로부터 3세기를 지나 지금은 21세기다. 어느덧 우리는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지금은 늑대가 우리 집에 침입하려 해도 경비원 아저씨의 제지에 그 꿈을 이루지 못할 듯하다. 또는 CCTV에 잡혀 곧 탄로 날지 모른다. 동화는 어른들이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그속에는 치밀한 계산들이 깔려 있다. 누가 이 글을 이 그림을 읽어주고 봐줄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까. 아이들에게 임대차 3법의 실효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면 그들은 손가락을 빨다 배식 웃으며 가던 길을 갈지 모른다. 하지만 옛날 옛날에 아기돼지 삼형제가 살았어요라고 말문을 트면 아이들은 거북목이 된 채로 앉아 그 어른을 둘러싸지 않을까. 그들의 무의식은 자신들이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짚으로 된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무로 된 집 역시 부서지기 쉽고 불탈 염려 또한 있어 안전하지 않다. 벽돌이 정답이다로 귀결될지 모른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무조건 계산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 우리 집에 아기 돼지 삼형제가 살았는데 어느 날 늑대에게 잡아먹혀버렸지 뭐야 라며 그때의 끔찍했던 일을 허무했던 일처럼 떠올리는 어른이 돼 있었던 건지 모른다. 그땐 두려웠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슬펐을 텐데.. 동화일수록 작가의 트라우마가 더 잘 드러난다. 아니,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들 때문에 그러한 감정들이 더 도드라진다. 그 아이가 커 저런 어른이 됐구나 라며...

산에서 진짜 늑대를 마주쳐도 그런 말이 나올까.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난 늑대의 외모가 멋있어 보였다. 또는 쓸쓸해 보였다. 늑대는 무리 지어 다니는 걸로 아는데 그 녀석은 왜 혼자였을까. 그 동화는 어쩌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잡아먹는 늑대 혹은 여우가 만든 이야기였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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