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by 문윤범


개들은 푹신한 인형이나 제 소파 같은 것에 대한 집착이 있다. 체취가 가장 잘 묻는 것들이어서 그럴까. 냄새 맡기 좋아하는 저 녀석.

인간은 TV 앞에 앉는 것이 일이다. 컴퓨터 앞에 머무르기도 하고, 우리 집 집사는 언젠가부터 기도하듯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택배가 왔는데 커피 머신이었다. 스마트폰에 커피, 새로운 조합? 거긴 내가 들어갈게. 비워둬! 난 박스 안에 들어가 좀 쉬련다. 들어와있으니 좋은데 또 무슨 일이야? 우리 집 집사, 아니 인간들은 소리를 많이 낸다. 외로워서 그런가. 내 저 인간 친구 하나 데려오는 걸 못 봤다. 창문 밖에는 매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가끔 출근할 때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집 집사는 늘 어깨가 축 처져 있어서 말이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왈왈이 저 녀석은 저녁만 되면 산책 나가자고 난리다. 철 좀 들어라 이 녀석아. 땅바닥에 발붙이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여름 대구 길바닥에 발을 한 번 데여봐야 정신을 차리지 니가! 저리 안가?!


지가 무슨 복싱 선수인 줄 알아..

저 냥냥이 누나는 냉장고 위에 올라가 있는 게 일이야. 자기 방에 아빠가 아파트 같은 것도 만들어놨는데 말이다. 등에 발만 대면 난리고. 빈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하는 게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등이 예민하다나 뭐라나. 다 각자의 삶이 있는 거지..

오늘은 뭐 재미있는 냄새 없나? 책상을 새 걸로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책상다리라도 좀 뜯어볼까. 요즘 이가 너무 가렵다. 아빠가 바빠서 양치를 잘 안 해준다. 올리버 선생님 유튜브 보니까 개껌 좋은 것도 나왔던데. 그런데 요즘 아빠가 산책을 안 나가려고 해 걱정이다. 바쁠수록 건강 챙겨야 하는데.. 내 목줄을 갖다 받쳐봐도 피곤한 표정만 지으니. 시련 당했나? 옷에서 여자 사람 냄새는 안 나는데..

달콤한 인생 보면서 기네스나 마시고. 나 저 대사 스무 번도 더 들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아빠는 항상 무료함에 젖어 있고.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는 게 아닐까. 난 오늘만 산다. 이젠 그 대사도 외우겠다. 옆집 아저씨..


소파 옆에는 왈왈이가 냉장고 위에는 냥냥이가.

그래도 외롭지 않다. 내려와 자기 방으로 가는 냥냥이와. 이제 잘 시간인가. 하지만 나는 왜 아직도 잠들지 못하는가.

여전히 쓸쓸하다. 왈왈이만큼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가슴속 공허함을 채울 길 없다. 같이 걸어주지 못해 미안해. 내일은 산책 가자. 많이 나가고 싶었지? 아니, 지금 말고 내일 말이야. 너 오늘 책상다리 뜯어놨더라. 냥냥이가 자꾸 때려서 화난 거야? 그렇다고 그걸 뜯고 있으면 되겠냐? 고양이들은 원래 그래. 보호받고 싶어서 저러는 거야. 박스 안에 들어가고 하는 거 말이야.

나도 재워주고 밥 먹여주는 사람 있으면 좋겠다. 어릴 땐 나도 그랬어. 그런데 어른이 되니 살 길 찾아야 하더라. 직장 구하고 돈 모아서 아파트도 계약해야 하고 말이야. 은행에서 빌린 돈 몇 년 동안 갚아야 하는 줄 알아? 로또라도 걸렸으면 좋겠다. 내가 왜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글이라도 써볼까.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사는 남자. 재은 씨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해 볼까. 대박 나면 어떡하지? 댓글 답글은 어떻게 다 달아주지?

망하면 어떡할까? 그냥 회사나 열심히 다녀야 하는 걸까? 그리고 내일 난 다시 출근길에 있을까..


2022년 4월 3일, 침전동 더오름아파트, 오늘 날씨는 맑지도 흐리지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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