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으로 소고기가 들어간 떡국을 먹은 뒤 밖에 나와 커피 한 잔을 마시니 그런데로 인간적인 삶 같았다. 공장에서의 일주일이었다.
기계들에 둘러싸여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일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일하고 있는 열아홉살의 아이들을 봤다. 그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나처럼 단기알바를 지원했다. 양산의 한 공장. 나는 그때 20대 중반이었나 후반이었나. 나는 그때 그 불빛들이 아름다울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대도시 주위에는 작은 도시들이 있고, 혹은 도시 끄트머리에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은 그 불빛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 '황혼의 빛'을 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 즈음 스웨덴 말뫼의 도시 재생사업에 관한 영상을 봤고 공장들이 있던 곳을 정비하고 새로 꾸며놓은 것을 보면서 변두리 지역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도시 재생사업이나 부산 경남 지역의 환경에 대한 것이 아니라 황혼의 빛이라는 그 영화 제목에 대한 것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핀란드인이다. 그 영화의 원어 제목은 'Laitakaupungin valot'다. 구글 번역기에서 번역을 하면 두 번째 단어 첫 번째 글자를 대문자로 했을 때와 소문자로 했을 때의 뜻이 미묘하게 달라지는데 'Let the City Lights'와 'The city lights' 두 개가 나온다. 영문 제목은 공식적으로 'Lights In The Dusk'이고 프랑스에서는 'Les Lumières du faubourg'로 지어졌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난 말뫼의 도시 재생사업과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게 됐고 부산 경남 지역의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
Laitakaupungin Valot, 2006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보면 무뚝뚝한 핀란드인의 정서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철학적인 이야기나 긴 대사조차 나열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앞에 놓인 커피잔은 무료해보이며, 그건 꼭 그의 표정을 닮아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다. 커피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표정한 표정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인가. 울고 웃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 영화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나 역시 공장에서 일주일을 보낼 때 울거나 웃지 않았다. 일주일 간의 아르바이트가 끝났을 때 부산대학교 앞 Bar로 가 칵테일 한 잔을 마셨다.
손님이 없는 바에서 직원들과 루시드 폴의 노래를 들었으며, 하지만 더 이상의 영화 같은 전개는 없었다.
Laitakaupungin Valot, 2006
그 영화는 무미건조한 분위기 속에서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그래서 놀라운 반전이었고 나름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공장 그 불빛들에 대한 것이다. 너무도 선명한 소고기가 들어갔던 그 떡국의 맛에 대한 것이다. 모든 단서들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떡국, 졸업을 앞둔 아이들, 그리고 쓸쓸한 불빛. 그 공장은 1월 혹은 2월에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