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하루를 어떻게

by 문윤범


야구 선수들은 오늘 한 게임을 위해 오늘 하루를 그것에 맞춘다고 한다. 다음날 있을 경기를 위해 잠을 자고, 푹 자고 개운한 몸 상태로 일어나 밥을 먹고 야구장 갈 준비를 하고 야구장에 와 몸을 풀고 연습하는 것이다. 곧 게임이 시작된다.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지만 어쩌면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 안 쓰는 시간에 뭐 할까. 소설을 쓴다면, 300페이지 정도 되는 소설을 쓰는 데에는 아마도 최소 일 년의 시간은 필요할지 모른다. 이야기를 떠올리는 게 일이고 쓴 글을 고치는 게 노동이지만, 하지만 이 단어를 쓸까 말까 저 단어가 괜찮지 않을까, 이런 문장은 어떨까, 왜 내가 아는 단어는 이것 뿐이고 내가 가진 문장력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이 문장은 정말 멋지다, 세상이 모두 내 것 같다, 그런데 왜 책은 팔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들이 뒤엉키며 반복되고는 한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과정이란 참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글을 쓸 시간이 오면 점점 긴장이 되고 날카로워지며, 그래도 오늘은 이만큼 했다 싶으면 긴장이 풀려 곧 예민함을 잃어버린다. 조금 더 일정한 흐름이 필요하다. 슬럼프에 빠져도 최대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하며, 유레카를 외치는 일이 있어도 금방 원래의 모습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그건 누구도 가르쳐준 적 없는 것이다.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길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보고 자동차를 보며, 가끔 누군가의 차 안에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도 한다. 듣고 만지기도 하고, 냄새도 맡는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라는 책 제목을 접하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의 작품이다.

서점에서 어떤 작가의 어떤 책 몇 구절을 읽어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겐 인터넷 기사를 읽고 영화를 보는 일이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 형식과 격식 속에서, 또는 프레임 속에서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처음 가져보는 감정을 느끼는 일이 중요할지 모른다. 아는 게 없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없고 아무런 자극도 받을 수 없다. 나도 모르겠다. 세상은 왜 이리 복잡하고 어려운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돈이 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또는 현실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플레이볼 소리가 들리면 게임이 시작된다. 그때 나는 다시 즐길 수 있을까. 즐기며 이 어려움들을 헤쳐나간다 말할 수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교외의 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