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를 만나다 1부

episode 3

by 문윤범


파리에서 3년 지내는 동안 두 군데의 어학원을 다녔고, 마지막에는 베르사유에 있는 한 시립 미술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기도 했다. 결국 비자 갱신을 위한 목적이 되고 말았지만 미술대학에 다니는 건 어릴 적부터 꿈꿔온 일이었기에 입학에 필사적이었다. 아직 못다 한 일들이 있다 생각했고 그래서 미대에 입학해 공부하기로 결심했지만, 하지만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

2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사진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서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른이 넘은 나이가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왜냐면 같은 반 아이들이 대부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이었고 함께 어울리기 좀 그랬다. 옷을 입는 방식이 조금 달랐고, 웃는 방식이나 행동하는 방식에도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 것을 느꼈다. 물론 나처럼 30대의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결혼을 한 40대 50대의 프랑스 여자들까지 있었지만 울타리에만 들어오면 탈출을 꿈꾸는 양이 되는 본능을 억제하지 못했다.

학교 생활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만난 몇몇의 사람들과 선생님들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몇 달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에도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난 글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본능은 그렇게 움직이는 듯했다. 그림을 배워서 글을 쓸 목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건 분명히 노동이었고, 난 반 고흐가 왜 자신의 한쪽 귀를 반쯤 잘라냈는지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림 그리는 일에는 도저히 소질이 없다고 느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지만, 하지만 그럴수록 하얀 여백을 채우는 글자의 수는 늘어만갔다. 어차피 글자란 그리는 것이기도 하다. 적으라고 하면 어려워지지만 그리라고 하면 쉬워지는 것. 만약 그림을 적으라고 했다면 그렇게까지 고통스럽지는 않았을까.

첫 데생 수업 시간이 떠오른다. 교실 가운데에 해골과 뼈대 하나를 놓고 둘러모여 각자의 종이에 그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작업을 다 끝냈을 때에도 난 갈비뼈 몇 개만을 그려놓고 있었다. 아무리 똑같이 그리려 해도 똑같은 모습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해골이 될 것 같기는 했다. 입이 마르기 시작했고, 그때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디테일부터 하려고 하지 마. 크게 한 번 보렴."

한마디의 뼈에만 집중하고 있던 내게 교수님은 뼈대 전체를 보라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내 글 쓰는 방식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그 즈음 난 소설 하나를 쓰기 시작했는데 도입부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선생님이 해준 그 말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다. 마치 그 선생님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밤 교수님은 내 방 안에 있었다.

교수님의 충고 한마디는 큰 힘이 됐다. 몇 가지의 중요한 시퀀스를 만들었고 이야기가 구성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검사 받으려는 듯 숙제 하듯 글을 써 내려갔다. 내가 시도한 첫 번째 소설이었다. 물론 그건 나중에 많이 변형이 되었지만 말이다.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초콜릿을 배우기 위해 왔고, 일단 언어 능력부터 늘려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고, 그러다 어릴 적 꿈을 쫓고.

글을 쓰는 일이 과연 내 꿈이었나라는 생각도 했다. 분명한 건 학창 시절 내 책과 공책에는 낙서들로 가득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쉬는 시간마다 칠판에 축구 선수들 이름을 적어놓아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날씨가 더워지니까 미친놈들이 생기는구나.

나도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쓰지 않으면 말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글을 쓴 이유였다.

학교에서도 혼자서 반 아이들을 다 왕따 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이제는 제법 말한다. 글을 쓰면서 내 사회성이 조금 성장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일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몇 년을 방황하다 프랑스 유학 길에 올랐다. 그 과정이 석사 과정이었다면 대학원의 캠퍼스는 파리였던 것이다. 그건 설레는 일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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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상징일까, 아님 모든 파리를 여행한 사람들의 추억의 상징일까


에펠 탑을 처음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내게 책 한 권을 선물해 준 사람이 있었는데 파리에서 만났고 그 사람이 나를 에펠 탑이 있는 곳으로까지 안내했다. 그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였다.

오페라에서부터 트로카데로 광장까지 걸었는데 그 거리는 길었지만 내겐 짧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 해서웨이가 휴대폰을 던진 것으로 유명했던 분수대가 있었고 그곳은 콩코드 광장이었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지났고 도쿄 궁을 보기도 했다.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관광객들에 둘러싸여 그 탑을 볼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도 이순신 장군 동상을 저 크기로 만들었으면 더 멋있지 않았겠냐고. 생각해보면 조금 기괴하지 않은가. 저 거대한 철탑이 내겐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다는 건 알겠는데 낮은 건물들 사이에 우뚝 솟은 모습을 보니 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은 그랬다. 그때는 한국에서 만나던 사람들을 그곳에서 다시 만난다는 게 신비로운 일이었다. 그들에게 의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난 에펠 탑에 기대기 시작했다.


에펠 탑은 대각선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생각했다. Pont de l'Alma 와 Pont d'Lena 다리 사이에 별로 예쁘지 않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에펠 탑을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웠다. 그곳은 차가 다닐 수 없는 다리였다. 찾아보니 이름이 드빌리 인도교 인데.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름만으로 나를 끌어 당긴 것은 16구와 15구를 잇는 다리 중 하나인 미라보 다리, Pont de Mirabeau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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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t Alexandre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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