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음식에 대한 적응. 그건 그 나라의 문화에 익숙해지는 일이기도 했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난 찌개류를 좋아했기에 프랑스 음식이 입에 맞을까 걱정했다. 거의 한국 음식만 먹으며 자라온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그들에게 거부감을 주지는 않을까.
한국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포장해가며 마늘 냄새가 날 것을 우려했던 메트로 열차 안에서의 내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을까. 마늘 냄새가 났다. 내가 서 있는 쪽에서 무언가 낯선 냄새가 풍기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 열차 구석에 외국인 한 명이 서 있다.
며칠을 거의 빵만 먹고 그러다 어느 날 메트로 열차에 올랐을 때는 내 몸에서 버터 냄새가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 열차 구석에는 외국인이 없었던 걸까. 열차 한가운데의 어느 자리에 앉았기에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몸에서 나는 냄새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든지 한국인일 수 있고 프랑스인일 수 있는 몸이었다. 특히 파리에서는 그렇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완벽한 파리지앵이 될 수 있는 곳. 지금은 그게 파리의 마케팅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파리는 낭만적인 곳이다.
적절히 프랑스 음식을 먹으며, 또 적절히 한국 음식을 먹으며 지냈다.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계획 없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삶은 계획 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계획하는 삶을 포기하고 사는 쪽을 택했다. 루앙에 갈 때도 기차표를 예약하지 않고 가 몇몇 사람들의 우려를 샀다. 물론 카드가 없었기에 그랬다. 어쨌든 기차 표를 예약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차 표를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과정들을 거쳐야만 했던 것뿐이다.
"루앙에 가려고 하는데 몇 시에 기차가 있나요?"
"어디 가신다고요?"
정확한 발음은 후앙에 가깝다. 프랑스에서는 r을 ㅎ처럼 발음한다. radio는 하디오 romance는 호망스 Rouen은 후앙으로 발음해야 했지만. 하지만 후앙이라 말했다. 그런데 그 발음이 매표소 직원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루 앙요."
국립국어원이 정한 프랑스어 표기 세칙에 r 발음에 대한 규정은 없다. 끝내는 이런 정보도 얻게 되었으니 그러한 과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테다.
아무튼 음식 문제로 적응못할 일은 없었다. 나는 프랑스 문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해나갔다. 파리에는 한인마트도 여러 군데 있어 집에서는 한국 음식을 주로 해먹었다. 사실 프랑스에 마트가 있을 거라는 것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황당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랬다. 프랑스인들의 삶은 영화를 통해 본 것이 전부였고 주인공이 마트에서 장보는 장면은 볼 수 없었기에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남은 동전 처리하겠다고 계산대 앞에서 동전 세고 있는 아줌마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 날은 동네 마트에서 파에야라는 음식이 포장되어 있는 것을 봤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곧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져 있는 요리였다. 투명한 비닐을 통해 내용물을 볼 수 있었다. 밥이 들어 있었고 닭다리와 홍합, 오징어 같은 것이 보였다. 동그란 햄도 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살라미라는 것이었다. 밥 색깔은 노랬다. 그것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샤프란이라는 향신료가 들어가 그런 색깔을 띠는 것이었다. 카레와 볶음밥 그 사이에 있는 듯한 음식이었다. 홍합과 오징어의 조합은 짬뽕의 그것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요리였다. 그럼에도 향수병은 생기기 마련이다. 반대편의 세계에서 반대편에 두고 온 지난날의 삶을 그리워하는 병. 그곳에서 프랑스의 이웃나라 스페인 요리를 먹으며 그 병을 달래기도 했다.
계산대 위에 올려 놓은 파에야를 보며 뒤에 서 있던 꼬마가 자신의 아빠에게 물었다.
"저건 뭐야 아빠?!"
나도 궁금했다.
"응. 파에야라고 스페인 요리인데..."
스페인 요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집으로 돌아와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다. 맛있었다. 선택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자신감에 차올라 며칠 뒤에는 마트에서 처음 보는 이름의 피자를 구입해왔다. 냉동피자였는데 chévre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단어의 뜻은 알지 못했지만 뭔가 새로운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집었다. 집으로 돌아와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chévre는 염소를 뜻하는 단어였다. 그건 염소젖 치즈가 올라간 피자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냉동피자와 염소젖 치즈는 두 번 다시 먹지 않을 것이다.
"Merci!"
merci는 우리나라 말로 고맙다, 고맙습니다를 뜻한다. 프랑스에서 살며 수도 없이 들었던 말. 혹은 수도 없이 해야 했던 말. 그런데 발음이 쉽지 않다. 연습하면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완벽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뒤따를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외국어를 똑같이 따라 하기 위해 힘들이는 걸까. 그건 정확히 내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다른 건 몰라도 흉내 내는 일에는 꽤 깊은 노력을 기울이곤 하던 나였다. 그래서 프랑스어 발음은 꽤 좋은 편이었다. 어휘가 부족해 대화를 더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발음은 꽤 비슷하게 흉내 냈다. 그래서 처음 만난 프랑스인들이 은근히 기대를 했다 나중에는 다소간의 답답함을 표출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소르본 어학원을 다닐 때도 발음 테스트에서는 늘 1등을 차지했다. 'prononciation' 수업은 특성상 비슷한 언어권에서 온 사람들을 묶어 놓았는데 그래서 우리 반에는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남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한 스무 명 가까운 인원이 수업을 받았는데 대부분이 여자였다. 그들 사이에서 난 항상 1위 자리를 지켰다. 수업 시간마다 이루어지는 테스트에서 항상 최고점을 받았다. 그러다 정식 시험에서는 우리나라 여성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기고 2등에 머물렀는데 그때 난 무척 억울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흉내 내는 것에 대한 꽤 큰 덩어리의 자존심을 안고 있다는 것을.
그게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흉내 내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을 깨우쳐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것에는 자존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누구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지 못한다. 흉내 내고 따라 하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난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난 무엇도 창조해내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런 것에는 억울해 할 필요 없다고.
아무튼 그때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하고 미소 짓던 그녀의 표정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마트에 가는 일이 일상이 되며 여자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릇과 컵을 보는 내 시각이 가끔 여성의 그것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 안에는 정말 다른 세계가 있어 우린 다르다 느끼는 걸까.
냉장고 안에 머리까지 집어 넣어가며 뒤에 있는 것을 고르는 여자, 아줌마. 그런 것까지 따라 할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 정말 깊숙한 곳까지 머리를 집어 넣는 아줌마를 봤는데, 프랑스 아줌마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지만 그런 아줌마는 보지 못했다. 그 아줌마가 레전드였던 것 같기는 하다.
장을 보러 가기 전 쇼핑백을 챙겨가는 일도 좀처럼 습관이 들지 않았고, 잔돈을 처리하려 계산대 앞에서 동전을 세는 일 또한 할 수 없었다. 적어도 10년은 아줌마로 살아야 그런 습관이 들지 않을까. 자취 생활도 유학 생활도 이렇게 계속 이어지나 하면 끊겼기에 원래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