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x jours, une nuit'

by 문윤범


범일동 현대백화점 앞에서 마리옹 꼬띠야르를 마주쳤다. 그녀는 광고 사진 속에 있었고 난 길 위에 있었다. 그리고 난 그녀와 함께 사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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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마리옹 꼬띠야르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봤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다르덴 형제의 이름이었다. 다르덴 형제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영화다. 프랑스어 제목은 Deux Jours, une Nuit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보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그 사이 그들의 이야기도 디지털의 시대로 넘어왔다. 변하지 않는 건 노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싸움을 그렸다. 그때까지 본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세 편이었는데 그들 영화의 특징은 카메라가 배우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숏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더 좋은 그림을 위해 벽이나 기둥 같은 구조물에 가리는 일이 없도록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도 특이점이었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하지만 다르덴 형제 영화에서는 벽이나 기둥 같은 것들이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주인공들의 감정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아역 배우들이 등장해도 그들 역시 일을 한다는 것이다. 피자를 나르고, 엄마를 도와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언가를 찾고 검색하는 일도 한다.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말이다. 노동의 진실일지 모른다. 누구도 노동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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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리옹 꼬띠야르가 회사에 복직하고, 하지만 동료들이 1000유로의 보너스를 받기 위해서는 마리옹의 복직이 불가능하다는 대립에서부터 시작된다. 회사 동료들은 투표를 한다. 마리옹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나선다. 내가 그 공장 직원이었다면 그녀가 얄밉게 느껴졌을 것이다. 마리옹 꼬띠야르 같은 매력적인 여성을 위해 1000유로의 보너스를 포기해야 한다면 말이다. 여기서 영화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낄 수 있다. 무언가 동떨어진 감정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관객들은 어쩌면 마리옹의 편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녀는 마리옹 꼬띠야르이니까.

하지만 내가 길 위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1000유로의 보너스를 놓칠 수 없는 노동자라면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산드라다. 산드라의 모습이 참 애처로워 보였다. 건강하지 못하고 나약하기만한 그녀. 그런 그녀가 큰 맘 먹고 다시 일해보겠다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1000유로의 보너스나 챙기겠다니. 내 자신이 이기적으로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카메라는 산드라의 동선을 집중적으로 따라다닐 뿐이다.

산드라의 남편 마누는 그녀가 설득을 포기하려 할 때마다 다시 일으켜세워 동료들을 찾아가게 한다. 당신은 일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며 용기를 심어준다. 산드라는 계속해서 동료들의 집을 찾아가고 초인종을 눌러댄다. 그들은 갈등한다. 누군가는 보너스를 받으려 했던 자신이 못났다며 그녀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또 누군가는 욕을 하며 그 돈을 왜 너한테 빼앗겨야 하나며 화내며 자리를 뜬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아프리카 이민자 동료의 집이었다. 그에게도 설득한다. 자신을 위해 투표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며칠 뒤 투표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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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이야기는 참 현실적이지 못했다. 아니 현실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돈을 선택해야 하나 인간을 선택해야 하나, 매일 그런 결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면 난 그것이 현실이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영화감독의 입장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오디션을 본다면 누군가를 탈락시켜야 하고, 단 한 명의 배우를 뽑기 위해 수십 수백명을 탈락시켜야 하는 일도 흔하지 않은가.

다르덴 형제, 그들은 노동 인권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알려졌다. 영화감독으로서는 하나로 보겠다. 그는 어쩌면 노동 구조학에 더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이런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을 노동자로 보지 않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노동자다. 모두 일하는 사람들이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은 영화감독의 인권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아닐까. 칸 영화제가 그들에게 수많은 트로피를 안겨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그들이 '로제타'라는 영화로 벨기에 청소년 노동법의 개정을 이끌었다는 점은 참 역설적이다. 선순환일지도 모른다. 잘 돌아가는 구조라 말할 수도 있다. 샤넬 가방을 들고 샤넬 향수를 뿌리면 안되는가. 하지만 샤넬을 들고 묻히고 다니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아무런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 테다. 악순환이 일어나더라도 절대로 이해 못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샤넬 광고 속 마리옹 꼬띠야르를 동경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며 사는 것도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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