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5
그곳에서 난 페미니즘의 기운을 느끼기도 했다. 파리에서 한국인 여자들을 만날 때면 어떤 강한 기운을 느끼고는 했다. 그것은 때로 경직됨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네 살림 감독의 영화 '이프 유 다이'에서는 그런 대사도 나온다. 프랑스에서는 여자들의 힘이 세다는 말. 한 쿠르드인의 충고였다. 중동의 사람들 역시 서구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남녀 갈등 혹은 분열의 문제는 사회적인 관점에서만 이야기된다. 나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이 일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느낀다. 남자도 여자도 그들 몸 안에는 모두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이라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몇몇 여자들과는 대화하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왜냐면 그건 그들이 이미 싸우는 자세에 돌입해 있다 느꼈기 때문이다. 연기자로 치면 이미 몰입돼있는 배우였던 것이다. 대본 리딩도 하기 전에 상대역인 나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 반대로 그런 역할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배우도 있었다. 그게 남자였든 여자였든 말이다. 난 반쯤 몰입돼있는 상태였다. 경계선에 있으려 노력했다. 남자로서의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우선은 그게 문제였다. 내 안에도 여성성이 있다는 것을 짐작했기에 어느 편에도 서지 못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싸움, 그게 더 큰 문제였다.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정작 프랑스 사람들은 페미니즘으로부터 평화롭다 느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상태처럼 보였다.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한국 여자들의 말투와 몸짓은 약간 어설픈 연기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영화 감독이 배우에게 그런 말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절제된 연기를 해달라고. 하지만 내지르는 연기를 요구할 때도 있다. 중요한 건 감독의 판단이며 배우의 판단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샤를 푸리에로 알려져 있다. 페미니즘 시대를 연출한 건 그인가. 아니면 그건 그저 자연스럽게 일어난 운동이었을까.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하나를 하고 나면 빨리 잊어버리는 편이 낫다.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도 좋지 않다. 왜냐면 머지않아 또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할 테니까.
표정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살인의 추억' 엔딩 신에서 보여준 송강호의 연기가 그랬다. 그는 카메라를 쳐다보는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말했다. 그렇다고 감정 연기를 할 때 손을 사용하고 온몸을 사용하는 배우들을 연기 못하는 배우라 말할 수는 없다. 손과 발을 사용하면서도 멋진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있다. 심지어 등을 이용해서 최고의 연기를 펼쳐 보인 연기자도 있었다. '올드보이'에서의 최민식이 그랬다.
'밀양'에서의 전도연 연기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땅바닥 위에서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연기를 그렇게 표현해낸 배우도 드물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분명한 길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길 위에서 자신을 찾는 일일지도 몰랐다.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왜냐면 거리의 사람들이 대부분 외국인이었으니까.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길 위에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에 시선을 집중시킬 수 밖에 없었다.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프랑스에 가면 한국 사람들을 만나지 않겠다는 막연한 다짐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모두 피하고 다닐 수는 없다. 그들과 나는 더 깊이 통하는 사이이다 보니 한마디라도 말을 주고받으면 그것을 끊어내기 힘들었다. 물론 내가 인간관계에 비교적 소극적인 인간이라는 것이 도움 될 때는 있었다. 그럴 때는 내 성격도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금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말들을 끄집어내고 싶을 때는 시선을 둬야만 했다.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이 지나가면 자연스레 눈빛을 주게 되었다.
토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일처럼, 그런 순간을 필요로 하기도 했다. 몸이 반응했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면 반가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다음 날 후회될 때가 많았지만.
한 번 말을 트면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속으로 되뇌곤 했다. 어차피 평생 살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기에 버틸 만했다. 그곳에서 난 술과 사람을 조절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깨우치게 됐다. 그곳에선 비쌌던 소주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고, 마침 키르라는 술을 만나게 된 건 그래서 운명적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