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빈을 케빈으로 읽기도 한다. 내가 가장 자주하는 실수 중에 하나다. Kevin이 숲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Cabin이 숲 속에 있는 것이었다.
이 영화를 관람한 많은 미국인들은 그들 스스로 케빈이 된 듯한 기분이 아니었을까. 미국 영화는 많이 봐도 텔레비전 방송이나 드라마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서 저게 리얼리티 생존 프로그램 같은 주제인가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아무런 매력도 아무런 흥미도 느껴지지 않는 영상과 스토리. 그럼에도 버틴 것은 오직 포스터 하나 때문이었다.
어쩌면 한줄의 네티즌 평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공감했던 것은 이 영화가 훌륭한 아이디어 상품 같다는 표현이었다. 영화적으로 크게 뛰어남을 느끼지 못했다. 연출이 조금 유치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조금 더 기다려보자 했던 건 비밀스러운 지하 조직의 존재를 꽁꽁 숨기지 않고 일찌감치 드러내 보였다는 것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한 내 예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전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들이 있었고 그것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했다. 호러 영화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생각들이 감독의 시각으로 재해석되는데 설득력 있었다. 물론 그런 방식이 아주 어른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숲 속 온도를 높이고 조명을 더 밝게 하는 등의 행위를 버튼 하나 누르는 정도로 끝낸다는 것이 매우 전문적이고 기술적이라 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창의적인 것도 아니었다. 단지 주인공들이 지하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들을 보면서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취향과 솜씨를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마치 피규어 모으기가 취미인 어느 성인의 방처럼 느껴졌다. 그 방 안은 괴물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웃긴 건 인터스텔라에서의 4차원 세계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의 그것이 아이디어였다면 인터스텔라에서의 그것은 가설이었다. 또는 이론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사람들은 실전이나 실기를 더 흥미롭게 여긴다. 가능한 환경 속에 있다면 말이다. 그럴 용기가 생기고 난 후부터는 난 더 이상 아이디어나 이론 따위에 머물지 않으려 했다. 그러한 세계에 조금 더 깊이 다가서고자 했다. 하지만 땅속 세계의 어둠은 인간이 목격하고 느낄 수 없는 진실일지도 모른다.
죽고 난 뒤에나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정말 영혼이라는 게 남아 그곳에 머문다면 말이다. 4차원 세계인지 테서렉트인지 그것을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것은 아니었다. 모두 각자가 상상하는 것이 있었던 듯하다. 표현은 결국 제각각이다. 표현하는 게 정말 어려운 것일지 모른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문제는 자본력 혹은 기술력일 것이다. 더 먼 곳으로 가면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영화라 생각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업계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것을 떠나 영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 생각들은 또 어떤 식으로 풀이되고 해석될까.
The Cabin in the Woods, 2012/ Drew Godd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