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판 위의 여인'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soigner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일 년 넘게 초량의 알리앙스 프랑세즈를 다니며 불어를 공부했다. 지금은 그곳이 동래로 옮겼지만 추억이 많다. 처음 교재를 받아들고 집으로 오던 때도 생각난다.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면서 책 속에 적힌 글자들을 보며 프랑스어처럼 말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초량 길거리의 은행나무들. 알리앙스 프랑세즈 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다.
은판 위의 여인을 연출한 감독은 일본인이었다. 그러니까 초량 대로변 어딘가에 알리앙스 프랑세즈가 있었던 것과 비슷하달까. 그곳은 인천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했던 인천대교와도 같았다. 신비롭고 몽환적이었지만 언제 이 길이 끝날지를 몰라 막막했다. 처음엔 프랑스어가 재밌었지만 점점 더 힘들어지게 된다.
그 단어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게 신기하다. soigner는 분명 외운 적이 있는 단어 같았지만 쓴 적은 없는 것 같았기에 그랬다. 대사가 많지 않고 또 길지 않아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속 배우들이 말하는 속도는 빠르고 끝이 흐릿할 때가 많다. 그래서 뿌듯했던 것 같다. "치료가 필요한 건 아빠야"라는 대사를 얼추 알아들은 것이 말이다.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프랑스인이 말하는 프랑스어는 곧잘 알아들었다. 하지만 파리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길게 대화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들은 또박또박하고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말이 별로 없는 사람과 한 번씩 인사하며 오랜 시간을 보는 게 편했다. 단골이랄만한 Bar가 하나 있었다.
주인공 타하르 라힘은 프랑스에서 아주 흔한 얼굴이다. 자주 가던 커피집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한 번씩 그렇게 생긴 남자가 지나가는 것을 봤다. 그는 프랑스와 알제리의 혈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마티유 아말릭은 주기적으로 들리던 라파예트 거리의 필름 현상소 직원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계 폴란드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은 니콜라 사르코지였는데 그는 아버지가 헝가리인으로 헝가리 이민 2세로 잘 알려졌다. 어느 날은 생제르망 역 근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봤는데 한 아이가 친구를 향해 니콜라 사르코지! 니콜라 사르코지! 하며 놀리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아이의 이름이 니콜라였다.
그때 그 아이들은 큰 나무 주위에 모여 앉아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그때 그건 무슨 나무였을까. 문득 은행나무를 보고 싶었다. 초량을 잊지 않았다. 고작 3년 정도를 머물렀음에도 나는 아직 파리 거리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