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가와도 같이 이름 짓는다. 마치 부모의 마음 같다. 내 자식의 운명을 내 손으로 정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내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늘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하는 물음 앞이다. 이름 붙이는 일은 무엇보다 괴롭다. 내 지나온 역사에서 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으로 가 온갖 책들을 다 뒤져 열람 신청을 하는 일과 같다.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도 많은 책을 가지고 가나. 미래에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누군가가 물었다. 해와 달이 이별할 때 만나는 그 카페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가 뭐냐며. 카페 이름은 'sleep'이었다. 눈을 감으면 무엇도 보이지 않지 않는가.
"다른 남자가 생긴 거니?"
아니었다. 그녀는 멀리 떠날 계획이었던 것이다. 먼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실은 다시 돌아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래."
그녀의 입은 거짓을 말한다. 그의 입술은 떨리고 곧 그 남자의 얼굴을 상상하게 될까. 그녀가 서양의 철학자를 만나고 혹은 아프리카 땅의 한 가운데에서 원주민을 만나면 다시 그녀를 만나고 싶어할까. 그들과 사랑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감정에 충실할 필요도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진실이었든 거짓이었든 말이다. 카페에서는 멜랑꼴리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Patrick Watson의 Mélancolie가 희미하게 들리도록 했다. 평소 좋아하던 노래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듣는 노래였다.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나요?"
결말을 열어 놓았음에도 왜 내게 묻는가. 나는 문을 닫고 떠났는데 말이다. 레드카드를 받은 축구 선수처럼 홀연히 사라졌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책임을 느끼는 어깨는 무슨 이유 때문인가. 다시 큰 가방을 메고 떠난다. 공항으로, 더 먼 나라로.
바다를 건너는 몇 시간은 수백 년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과도 같았다. 두고 온 땅만 생각났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커튼 뒤에 가려진 세계처럼 두렵기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박수소리만을 기대한다. 환호하는 모습의 사람들만 그린다.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환한 결말만을 생각한다. 고대했고 염원했다. 모든 끝은 비극적일 것을 알기에 그랬던 건지 모른다. 끝내 제목까지 정해 내놓아봤자 다시 텅 빈 마음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출구만 찾는 눈이 되어 나는 다시 다른 곳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