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le Carré's

by 문윤범


존 르 까레의 소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스웨덴의 영화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손에 의해 다시 한 번 해석됐다. 1979년에 이미 BBC 드라마로 만들어진 바 있었다. 나는 그 영화를 보고 팬이 되었으며 그 스웨덴인 감독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영화는 초반부의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 음악과 존 허트, 그리고 게리 올드만이 서커스를 빠져나가는 장면이 유명하다. 그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에 하나는 인물들이 수평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많았다는 것이다. 문학을 향한 감독의 애정이 느껴졌다고 할까. 소설 속 글자는 가로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또한 영화에서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도 많았다. 멋진 구절들도 등장하며 그건 관객들을 감동시킬 만했다.

비밀 요원의 세계 속에 등장하는 언어와 그들이 다루는 것들. 전화기와 녹음기, 가방, 그 안에 들었을 술과 담배, 또는 조지 스마일리의 안경 같은 것. 목소리 좋은 배우들도 명연기를 펼치며 영화가 선사할 수 있는 기쁨들을 빼곡히 담아냈다. 그러나 잔잔함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고 때로 충격적인 비주얼도 선보인다. 프라하와의 경쟁 끝에 낙점된 부다페스트의 풍경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몫했다. 그리고 존 르 까레가 경험했을 첩보세계의 생생함이 바탕이 된다.


movie_image (92).jpg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유럽을 여행할 일이 있다면 이런 영화에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일 테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 같은 국가의 대도시에서는 그런 경험을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우리만의 모던함을 가지고 이 빈티지스러운 작품과 경쟁하고픈 꿈이 있었다.


THE-LITTLE-DRUMMER-GIRL-4-768x346.jpg The Little Drummer Girl, 2018


역시 존 르 까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이 그것에 가깝다. 또한 유럽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었지만 말이다. 보다 과감하고 직선적인 색깔들이 사용되며, 그러나 필름의 감수성을 느낄 만한 톤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연출자가 한국인이기에 서양인들이 감히 흉내내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박찬욱이 꾸민 첩보의 세계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사물을 비추는 방식이나 구도를 잡는 방법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칼릴이라는 캐릭터를 매우 멋지게 그려낸 것이었다. 샤리프 가타스라는 레바논 태생의 배우가 가진 신비로운 눈을 훌륭히 활용했는데 처음부터 꼭꼭 숨겨두어야 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프닝 신에서는 그의 팔과 다리 몸통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품 소리만을 들려줄 뿐이다. 그런 뒤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는 정적을 깨지만 감독은 침착함을 유지한다. 그들의 영화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다양하고 많았다. 영상미와 편집, 음악 또는 소리들. 그들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들.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로 보는 것 또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영화를 분석하고 파헤칠수록 점점 내게 다가오는 것은 고갈에 대한 두려움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를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가. 목마름이 나를 일으켜 세웠고 그렇지만 언젠가 끝을 보게 될 것이다. 스파이와 가장 어울리는 말 중에 하나는 돌아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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