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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Aug 07. 2022

아쿠아리스트의 눈


그들은 가까운 장래에 멸종우려 범주 중 하나에 근접하거나 멸종우려 범주 중 하나로 평가될 수 있는 상태에 놓인 것으로 전해진다.


흰고래라 불리는 벨루가의 머리에는 지방 덩어리가 있다. 벨루가로 이름 지어진 흰고래에는 멜론이라는 지방 덩어리가 존재한다고 한다. 툭 튀어나온 이마의 고래를 본 적이 있다. 그 안에 지방 주머니가 있다고 한다. 멜론은 고래가 내는 초음파를 조절하고 주파수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외부 물체를 파악하는 데에도 쓰인다고 한다. 나는 고래는 눈으로 보고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감각으로 길을 찾는 것으로 안다. 인간이 고래와 같다면 어떨까. 우리에게도 감각이 있어 길을 찾는 능력이 있다. 나는 언젠가 그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나는 정말 눈으로만 보고 길을 걷는 것인가.


그렇다. 인간은 눈이 없으면 길을 찾지 못한다. 적어도 손으로 더듬거나 발의 감각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의 추파를 던지기도 한다. 저 여자가 날 쳐다본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착각일지 모른다. 저 남자가 내 여자를 쳐다본다. 남자들이 주로 하는 오해일지 모른다. 인간은 눈으로 먼저 판단한다. 주위의 사물이나 사람들을 알아야 하고 파악해야만 한다. 장애물이 될 것이 있는지 살핀다. 그러던 중 길을 잃었다. 어느새 바다가 있는 곳으로 왔다. 배가 있어 타고 나갔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벨루가를 만났다. 그 녀석은 내가 뭔지를 알고 다가온 것일까.


상상의 바다에서 흰고래를 만났다. 그렇듯 인간은 눈으로 본 적이 없는 것을 떠올리거나 그리지 못한다. 바다는 어장이며 때론 놀이터다. 언제나 그 요리에 그 놀이 기구였다. 


고래들은 인간을 보며 무엇을 알까. 어떠한 형상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초음파와 주파수는 실체를 분석하는 역할을 할지 모른다. 고래는 인간을 안다. 그러나 초음파는 뼈를 투과하지 못하기에 두개골에 둘러싸인 뇌를 보지 못한다. 인간은 벨루가의 이마가 왜 저렇게 툭 튀어나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해부해야지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보기를 원하고 더 많은 것을 느끼기를 원하는지 모른다. 나는 안다. 벨루가는 자살할 수 없다는 것을. 땅으로 몸을 던질 능력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으로 안다.


우리는 왜 그 우울한 형상을 보며 아름답다 말하고 또 귀엽다 생각하는 것일까. 수족관에 갇혀 있는 벨루가나 물고기들은 우울하다. 나는 그것이 아쿠아리움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동물의 우울함을 보며 스스로를 달래려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하다. 성장의 고통을 치유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벨루가도 수족관 바깥의 인간들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들의 생사 여부나 멸종 문제를 그 이상으로 심각하게 여길 수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보지만 무엇도 보지 못한다. 아쿠아리스트들은 벨루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또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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