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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Aug 09. 2022

'헤어질 결심'


영화는 연극과 음악, 소설, 그리고 사진과 미술을 모두 취급할 수 있다. 영화라는 백화점은 과연 누가 만든 것인가.



말러의 교향곡은 사람들이 줄 서는 1층 명품 매장과 같았으며, 아니 줄조차 서기 힘든 명품시계 매장일지 모른다. 백화점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화장실도 쓸 수 있다. 들어오는 데에 제한은 없다. 그러나 그곳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사람들만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는 유독 네모나고 세모난 것들이 강조된다. 렌즈 화각을 넓혀서 벽면 같은 것을 보다 입체적으로 담는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인물들 또한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잡거나 하며 뾰족하거나 각이 있게 그렸다. 그것은 서래가 동그란 헬멧을 쓰고 동그란 바위 사이를 지나며 산을 오를 때의 감동이 더 커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더 크게 흔들린 지점은 그 장면을 조금 더 지나서였다. 공교롭다와 참 불쌍한 여자다. 비슷한 듯 다른, 서로 상반되면서도 계속 연결되고 이어지는 관계가 마치 하나되는 듯한 장면이었다. 결국 이 영화도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잊지 못할 감정으로 남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가슴속 깊숙한 곳으로까지 전달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더 냉정하려 노력했다. 엔딩은 살짝 공감이 되지 않았다.


위아래로 좁은 화면과 넒은 화각의 카메라 렌즈 탓에 무언가 고강도로 교육되는 느낌 또한 가졌다.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면 말이다. 심리적으로 굉장히 압박감을 가지게 했다. 가는 눈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들 사랑은 계속해서 갇히며 스스로 넓고 큰 세계를 거부하는 듯했다. 결국 그런 말을 할 입도 있을 것이다. 사랑을 뭐 저렇게 하는지.. 


나는 결국 이 영화를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한 관계의 이야기를 통해 연출자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도 소설도 관객도 독자도 언제나 만족할 수 없는 이유다. 나는 미래에는 모두가 영화나 소설을, 음악이나 미술을, 사진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공부하기 위해 본다면 그의 영화는 언제나 훌륭한 교과서가 되어준다.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나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영화화해주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처음 시작은 그랬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후회가 된다. 책으로 돈을 벌기 원하지만 자존심을 지켜야한다면 어떠한 더 큰 각오도 필요하다. 그 자존심이란 나를 지키기 위한 고집이 아니라 배설물 같이 태어난 내 창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이다. 박찬욱은 평생 알프레드 히치콕이 되기 위해 영화를 찍는 감독이었을까. 그의 영화에는 분명 그 특유의 색깔이 있다.


디테일 또 디테일이었다. 세공사와 같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장면 장면들이 어떠한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서 늘 아쉬움을 느끼는 건 부산이나 경상도 지역의 사투리를 표현하는 부분이다. 그러한 디테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사철성이나 오빠 PC방 알바 정도를 제외하면 경상도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하는 배우가 없었다. 내게는 배우들이 하는 감정 표현이 조금 묻힐 정도로 방언 구사력이 나빴다. 주인공은 결국 을지로가 고향인 남자였고 중국에서 온 큰 배우 탕웨이였다. 



마치 인생 애널리스트가 만든 작품 같았다. 많은 의미들이 숨겨져있고 그것들을 찾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배울 것이 많다. 창작자에게는 누군가를 따라 하는 일이 필요하다. 흉내 내고 따라 하려는 기질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얻은 존경을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가 자신을 문학가라 말할 때 나는 경쟁심리를 넘은 그 무언가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라면 말이다. 정서경 박찬욱이든, 정서경이든 박찬욱이든. 


가장 와닿게 된 한 줄 평은 마치 잘 만든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였다. 하지만 영화에는 소설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사진이나 미술 음악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반대로 나는 소설 역시 영화가 따라할 수 없는 고유의 멋이 있다고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 2022/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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