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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Aug 16. 2022

그는 안갯속 불빛과 같은 배우다


박해일을 처음 본 것은 '살인의 추억'에서였다. 그것이 배우 박해일과의 첫 만남이었다. 첫인상부터가 강렬했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흐름이 그랬으니까. 그 차가운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해 무서웠다. 얼마 전에 본 '헤어질 결심'에서는 또 다른 배우 박해일의 모습을 느꼈다.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장면에서 여자에 미쳐서..라는 대사를 할 때가 박해일을 다시 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들은 마치 헐리우드 고전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연극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의 모습 같기도 했다. 박해일이 연기를 정말 잘하는구나 싶었고 지금까지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궁금했다.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박해일 눈이 참 크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까지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었는지 궁금하다.

이후 '괴물'에서 다소 색다른 연기를 펼쳤던 것을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후 내가 본 그가 출연한 영화는 '남한산성' 뿐이었다. 그의 연기 필모그래피가 적어도 내게 있어 경범죄로 가득했다면 이번이 살인의 추억 이후 다시 살인사건이었던 것이다.

살인사건과 같아도 그이기에 잔잔하게만 다가온다. 그가 가진 무서움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경찰 같지는 않다. 경찰이기에 산을 그렇게 오른다는 것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영화이니까. 그런 경찰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삶을 사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어주니까. 처음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다.

'n차 관람'이라는 말이 일부 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것도 헤어질 결심이 가진 하나의 현상이었다. 영화가 무언가 누적된 고뇌들로 가득 차 보였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박해일 같은 배우도 없었던 듯하다. 당장 근심 깊어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 우수에 찬 듯 보이기도 한다. 별로 시인 같지 않은 문장들과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한 드립들은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다른 이유로 영화에 먼저 감정이입되어 얄밉기도 했고 굳이 저럴 필요까지 있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 해준이라는 캐릭터가 내게는 복합적으로 묘사된 듯 보였다.

영화에서 각본의 중요성이 드러나 보이는 것은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그것에 주목하고 이야기에만 빠지다 보면 정말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지만 어떠한 포인트를 찾은 것에 안심이라 생각한다. 명대사들이 분명 많은 영화였지만 박해일이 연기한 해준의 감정적인 부분에 나는 더 주목하고 싶다. 결국 배우는 얼굴과 몸으로 표현한다. 표정으로 말하고 소리로 다가온다. 스틸컷 한 장으로 이해를 돕고 싶지만 영화가 아니면 표현되지 않는 것이 있어 힘들다. 그저 박해일이라는 세 글자만 한 번 써볼 뿐이다. 흐릿하지만 뭔가 선명하게 다가오는 심상들이 그 글자 속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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