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윤범b Aug 20. 2022

여덟 문단 다음에 나는


여자의 미모는 남자를 의지하게 만든다. 그것 또한 권력이니까. 나는 그녀에게 빌붙을 용기를 잃었고 그 여자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에 지쳐 떨어져 나가바렸다. 그건 마치 종교를 포기하려는 마음과 같았으며, 그렇게 서서히 나는 나를 믿게 된다. 


그런 기분을 느낀지 오래인 것 같았다. 유튜브를 보는데 전소민이라는 여자가 등장했고, 나중에는 이상형 중 하나였던 한채아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도 질투와 시기심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렇게 생기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나는 예쁘고 아름답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여자들을 보면 그들도 남자 같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이유로 또 사랑을 포기하려 한다.


잘 생각해 보라 되뇌곤 한다. 화장을 지우고,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근육을 키우고 수염까지 자라게 하면 남자와 다를 것은 없다. 결국 생리적인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이 남과 여의 사상을 둘로 갈라놓았다면 그처럼 딱한 관계가 어디 있는가. 우리는 가끔 서로를 위로할 뿐이다. 한 잔의 술과 커피를 두고 마주 보고도 나는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젠 느껴본 지 오래다.


결혼한 사람들이 결국 나와 비슷한 처지일 거라 생각할 때는 그들 역시 오래전에 느껴본 감정일 거라 그랬던 건지 모른다. 그것이 사랑이든 그저 정을 나누는 일이든 말이다. 화장품 가게에 따라들어와 어색해진 몸과 식당에 들어와 큰 목소리로 이모를 부를 생각에 긴장이 되는 것조차 오래전의 일이다. 나는 여자를 위해 운전대를 잡아본 일이 없다. 나는 나조차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그녀를 위해 창문을 열어주고 노래 틀어본 적이 나는 없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1년도 채 다니지 않은 학교였지만 나는 그곳에서 그 아이에게 어느 정도 의지했다.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조금만 기댔다. 속에 있는 말도 가끔 털어놓았다. 순간 노포동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고, 지금도 양정 지하철역에만 가면 그때 생각이 난다. 얼마 전 길에서 우연히 그 아이를 마주쳤다. 마지막으로 본 게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우린 서로 못 본체했다. 너의 딸들은 잘 크니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 사이가 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런 소리를 듣기 전에도 나는 여자들을 사귀었다. 그러면서도 왜 얼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의 사랑을 꿈꿨는지 모르겠다. 손예진 주연의 영화 '클래식'을 보면서는 나도 정말 사랑을 할 것이라 맹세했다. 손예진은 이상형이 아니었지만 영화 속 사랑이 너무 예뻐 보였다.


된장찌개를 잘 끓인다 말해야만 진짜 여자로 보이게 하는 것인가. 그런 여자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집안일을 잘하고 내조를 잘하는 걸 어필하려는 모습이 이제 싫다. 그땐 나도 그랬는데 말이다. 미래의 내 아내가 음식을 잘했으면 좋겠다, 현모양처 스타일이면 좋겠다. 지금은 그것이 철권 통지를 하겠다 선포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남자들은 왜 그런 여자를 원했는가. 아빠들이 잘못했다. 요즘은 그런 말을 하는 여자가 없다. 남자들이 요섹남이 되어야 하는 시대다.


이제 남자의 미모가 여자를 의지하게 만들까. 남자들이 가져야 할 힘은 거기에 있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를 지켜줄 자신이 없다. 여전히 보호 받고 싶을 뿐. 누군가의 십자가가 되어 상징적인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작가의 이전글 그는 안갯속 불빛과 같은 배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