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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Sep 04. 2022

'태풍'


최근 정우성 이정재 주연의 영화 '헌트'가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을 봤다. 감독 이정재의 데뷔작이기도 해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어릴 때 '태양은 없다'를 정말 재밌게 봤는데 그런 모습은 잘 없었다. 잘 생긴 두 남자가 어깨동무를 하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끝내 서로 손을 잡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 영화 '태풍' 또한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그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서 더 멋졌다. 나는 이정재의 지금 얼굴이 그때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를 통해 각인된 그 얼굴이 이 영화에서는 무언가 끝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보다 남자다운 이미지였고, 그래서 난 이 영화를 좋아한다. 장동건이 연기한 씬은 그야말로 신을 압도하는 느낌의 캐릭터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검은 옷을 입고 있던 그의 모습은 금발머리의 여자들 사이에서 또 다른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이정재가 해군 정복을 입고 등장했을 때와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장면이었다.


태풍은 그러나 평단의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작품이었다. 영화의 스케일에 비해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영화 또한 아니다. 전신주와 나무가 기울고 간판이 떨어지거나 날아다니는 등 사람들 감정을 크게 동요시킨 영화도 아니었다. 비극적 상황에서 애국의 물결이 어느 정도 일기는 했으나 예상 가능하기도 했고, 씬이 헤어진 누나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의 감정은 다소 와닿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경험이 없거나, 또는 탈북자의 심정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고, 무엇보다 장동건 이미연이 남매 사이라는 건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영화는 상상이기도 하다. 누구든 장동건 이미연이 될 수 있듯, 어떠한 순간에는 비극적 상황에 빠진 연기자가 되는 것처럼 모두 그려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것을 현실화시켜주는 감독들은 그래서 욕을 먹기도 한다. 나는 될 수 없었던 영화감독을 당신은 되었으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사람들은 감상평을 한다. 어쩌면 그것이 그저 좋은 것뿐일지도 모른다. 내게 좋은 영화는 또 다른 상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크든 작든 어떠한 영감을 주는 것이 영화로써 내게 중요한 부분이었다. 국정원 작전에 투입되는 해군의 모습과 러시아 거리를 누비는 한 동양인 남자의 모습은 내게 무엇을 남긴 것일까. 이 영화는 상상이나 영감보다 어떠한 목적을 남긴 영화로 내게 기억되고 있다. 강세종과 같은 군인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 씬과 같이 어두운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을 묘사해 보고 싶다 와 같은.



태풍에 방사능 물질을 실어 보낸다는 상상은 기발한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 그런 생각이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자극할 만한 아이디어였다. 태풍은 그 자체로 재난처럼 다가오는데 그런 생지옥이 또 있을까. 장동건 이정재에 이미연까지 태워 보낸 그 바람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흥행몰이를 할 것인가. 그러나 영화라는 상상은 그 예상을 빗나가고는 한다. 그건 어쩌면 안전장치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장동건 이정재 정도는 있어야 한다. 거기에 이미연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창작은 위험 물질을 개발하는 일과 같으며 그래서 늘 안전을 고려해야만 한다. 흥행의 쓰나미가 반대 방향으로 가면 그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그래서 투자는 돈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영화가 좋아 모든 사람들이 영화감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필름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점점 비주얼적으로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며 먼 훗날에는 모두가 영화를 찍는 시대가 찾아와있을지 모른다. 상상하는 걸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시나리오를 쓸 다짐을 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재미있지 않은가.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 마시는 커피 또는 술, 그 자리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이야기들. 


혼자 늦은 밤거리를 거닐다 보니 그는 창작자가 되어 있었다. 혼자 하는 생각은 새로운 이야기를 낳는다. 그러나 혼자이고 싶어 그런 것은 아니었을 테다. 그게 내가 아는 영화감독의 모습일까. 배우들은 얼마나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아야 카메라 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일까.


태풍, 2005/ 곽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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