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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Sep 02. 2022

국민의힘 문무성 TV 제2화


<추어탕, 그리고 국민의힘>


"저희 어머니는 제가 고등학교 때 부산대 앞에서 돼지국밥과 추어탕을 파는 식당을 했어요. 돼지국밥은 엄마가 먹지 않는, 그런데 추어탕은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었죠. 저는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끔 떠올라요. 몇 년 뒤에는 돼지국밥보다 더 많이 먹는 음식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죠. 저는 과거에 노무현을 지지했고, 그 사람은 제가 투표한 첫 번째 대통령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 국민의힘에 속해 있죠. 정치적 포지션이 바뀐 걸까요?"

송전탑이 전깃줄을 연결시키고, 부산 외곽을 순환하는 도로들이 건설된 어느 고즈넉한 시골의 마을. 절대로 고요하거나 아늑하지만은 않은 이곳은. 

"여기는 대곡마을입니다."

마을회관이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은 어느 노파의 모습처럼 마을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은 추어탕 먹으면서 이야기할게요." 

철마 개좌골 추어탕은 얼마 전 가족끼리 산소 벌초를 하러 갔다 밥을 먹은 곳이다. 된장을 푼 국물이라는 것이 특징이고, 그래서 밥을 말어 먹기 좋은 국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된장도 좋아하셨겠죠? 그에 대한 이미지는 서민과 가까운 모습으로 대표되지만, 저는 그저 자신만의 고집이 있었던 모습으로 기억되네요. 그 시절의 부산상고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문계 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대학은 나오지도 않았잖아요. 그래도 변호사라도 됐으니 그렇게 정치도 하고 할 수 있었던 거겠죠."

주름이 가득한 손이 반찬들을 놓고, 그 손은 습관처럼 그것들을 나열한다. 깻잎무침과 된장 베이스의 고추장아찌, 나물들과 콩, 김치가 차례로 놓인다. 

"여기 이 나물이, 이게 고춧잎인지 무슨 나물인지 그런 거는 잘 모르는데 된장 콩이 하나씩 씹히는 맛이 묘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직 살아 있을 때 나는 가족을 따라 봉하 마을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천막 아래에서 팔던 봉하 마을의 소고기국밥이었다. 그를 더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그 얼큰한 국물 맛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없다.

"학벌이나 직업 같은 것이, 그런 뭔가 사람들이 인정할 할만한 타이틀이 없으면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였잖아요.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비대위 위원장에게도 노골적으로 학력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있었죠. 그건 그냥 떠보는 거, 초등학생들이 하는 간 보기 같은 것이었죠. 쟤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거였잖아요. 지금은 그런 시대가 돼가고 있다. 고졸 출신이지만 변호사는 됐던, 그런데 이제는 변호사도 필요 없고 뭐 그런 가능성을 보는 시대라는 거죠. 물론 아직은 가능성에 불과한 일이지만."

그 주름진 손은 끝내 뚝배기를 놓고야 만다.

"나왔습니다."

내 앞에는 기어이 추어탕 한 그릇이 놓이고야 말았다.

"여기는, 제가 생각하는 특징은 밥을 말아 먹어야 더 맛있다. 시락국밥의 상위 버전쯤 된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고학력자든 변호사 출신이든, 또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든 모두 다 자기들이 열심히 파온 분야가 있고, 저 같은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심심하면 낙서를 했거든요. 문학이 지성이 있어야 하는 건가요? 똑똑해야 되나요? 결국 글자에 대한 집착이거든요. 누가 더 잘하느냐 그런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나는 제피가루를 듬뿍 뿌려 먹는 것을 선호한다. 내게 사천요리 전문점에 가 마라탕을 먹어보고 꿈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쓰촨성의 진정한 마파두부 맛을 느껴보고 싶은 바람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을 잘했잖아요. 연설을 잘하셨고. 물론 그 말들이 문제가 되고는 했지만요."

한편으로 난 무엇 때문에 소설가가 되었고 또 지금 이 순간에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저한테 대통령인 동시에 어른이기도 했죠.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어요. TV로 그 방송을 보다가. 아빠가 제 앞에서 맨날 노무현 욕을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그때부터 노무현 욕을 안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지금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이십니다."

우리 사상은 진보에서 보수로 보수에서 진보로 그렇게 뒤바뀐 것이었는가. 어쩌면 난 노무현 정부를 향한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기억 때문에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땐 내 생각을 드러내 보일 방법이 없다고만 느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을 향해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 목소리 높이고야 말았다. 그래서 난 지금도 추미애 전 장관을 싫어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잘못된 일이었다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를 할 때는 늘 문이 있어야 하죠. 사람들이 만들어놓고 지키는 문도 있겠지만, 위험할 때 빠져나갈 수 있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출구도 있어야 돼요. 안 그러면 죽으니까요."

이 국물의 맛을 표현하는 데에 가장 적절한 단어는 오직 죽음뿐이라 느낀다. 죽이는 국물의 맛. 그는 그렇게 죽었다. 그것은 동사가 되어 뉴스 속보로 보도되었다. 2009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국민의힘에 속하게 된 것은, 진짜 그냥 그 이름이 너무 멋졌기 때문이에요. 다른 여러 이유들도 없다 말할 수 없지만 그 이름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에요."

내게 노무현 정신이란 그저 늘 맞서 싸우고자 했던 용기에 있었다. 그가 낳은 여러 논란들을 감싸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대통령을 선택한 책임은 국민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노무현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그리고 국민의힘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궁금하네요. 직접 답해주실 필요는 없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

가을이었다. 그것을 먹어 그렇게 느낀 것일까, 아니면 가을이 와 난 그것을 먹었던 것인가. 

곧 추석이었기 때문이다. 무덤 주위에 자라난 풀들을 잘라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맘때쯤 나는 박정현의 '몽중인'을 듣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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