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를 만나다 1부

episode 6

by 문윤범


Paul Gavarni는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시대가 변해 그 단어가 쓰이는 폭도 넓어졌지만 illustrator는 원래 삽화가 쯤으로 해석됐다. 파리 9구에 Paul Gavarni의 조각상이 있었다. 어느 작은 원형 교차로의 한 가운데에 세워져 있는 것이었다. 그곳 아래에는 12호선 Saint Georges역이 있다. 나는 그곳을 좋아했다.

원형 교차로는 경사진 길에 있었는데 세 갈래의 길로 나뉘어지는 곳이었다. 그 중 한 갈래의 길 끄트머리에서 유격 훈련을 하듯 담벼락에 올라 기둥을 잡고 앞으로 앞으로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봤다. 그게 마치 게의 모습처럼 보였는데 낮은 담벼락 위에 기다란 봉이 줄 맞춰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Paul Gavarni 조각상을 만든 것은 Denys Puech라는 조각가였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을 조각한 것은 누구였을까.

그때의 풍경을 다시 그려본다. 여섯 살 일곱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들이었는데 둘 중 하나가 자신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다시 고개를 돌리곤 잰 걸음을 하며 앞으로, 아니 옆으로 옆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저 멀리 신발 끈을 묶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그때 난 그 아이들이 프랑스의 미래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이들은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 좁은 인도 위를 걷다가도 조금만 턱이 있고 두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올라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 근성은 무엇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무엇에서 비롯되는 행동 의지일까. 신발 끈을 다 묶은 아빠는 어서 오라고 손짓하지만 끝까지 가고야 말겠다는 아이들의 의지는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건 훈련이었을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면 이제 정보전에 돌입하게 되는 것일까.

다 큰 어른들이 그런 곳에 올라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아직도 육체적 훈련이나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감각을 더 예민하게 키우기 위한 길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위험에 노출되고 모험을 시도하는 것이 성장을 위한 길이라 직감했던 건지도 모른다. 정보국은 군대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기관이다. 군대는 정보국이 분석해놓은 것들을 토대로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아이들은 아빠의 손을 잡고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Saint Georges역 입구에 잠깐 서 있었다. 다시 발걸음을 떼어냈다. 각자 임무가 있었고 각자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어느 날은 DGSE 본부가 있는 곳을 찾았다. 물론 구글에서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찾았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어떠한 단서들을 수집해 그곳이 있는 위치를 알아냈다. 난 그때 학교도 가지 않은 채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집을 나와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프랑스 대외정보국 본부를 찾아 나서는 일이었다.

몇 시간 뒤 난 그곳 앞을 지나고 있었다. 높은 담벼락이 세워져 안은 볼 수 없었고, 담벼락 위에는 철조망이 동그랗고 길게 엉킨 채 엮여 있었다. 팻말 하나가 붙어 있는 것을 봤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되고 접근하면 안 된다 뭐 그런 글자들이 적혀 있었던 것 같다. 경고문이었다.

기어이 카메라를 들어 담벼락을 사진 찍었지만 혹시나 감시 카메라에 그 모습이 잡히고 어디선가 한 무리의 사내들이 나타나 나를 체포해가지는 않을까 두근두근 댔다. 본부의 면적은 꽤 넓었는데 담벼락 한 바퀴를 모두 도는 데에 1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돌다 드디어 정문 앞에 서게 되는데.

문은 유리로 돼 있었고 까만 필름이 붙여져 안을 볼 수 없었다. 때마침 차 한 대가 나오느라 문이 열렸는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게 됐다. 흰머리를 한 여자가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 남자도 한 명 지나갔는데 그 사람의 인상착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회사원들 같아 보였다. 점심시간이라 밥 먹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직장 생활이라는 것은 결국 비슷한 패턴일 것이기에 레스토랑에서 밥 먹고 근처 카페로 가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오겠지라는 상상을 했다. 본부 주위에 있는 레스토랑, 카페 앞을 지날 때 그곳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을 슬쩍, 유심히 쳐다봤다. 내겐 일상적인 일이기도 했다. 거리를 걸으면서 레스토랑,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태우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그런 모습으로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더 낭만적인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저 머리가 짧고 피부가 검은 녀석은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곳으로 오게 된 걸까. 그들은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을까. 못 보고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다.

커다란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게 아니면 핸드폰이나 장난감 같은 디지털카메라를 외투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손과 함께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고는 했다. 무언가를 훔쳐야만 하는 삶. 집요하게 추적하고 쫓아가야만 하는 일상. 냉전마저 일상이 돼 이제는 그것을 전쟁이라 느끼지 못하는 시대에 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메리카 대륙에 심어진